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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3月号
[2008년03월] 귀신같은 불화살, 다시 하늘을 날다
최초의 조선 블록버스터 <신기전>[/td][/tr][/table][/td][/tr][/table]--------김유진 감독의 블록버스터 시대극〈신기전〉이 마침내 8개월 동안의 긴 촬영을 마쳤다. ‘신기전’이라는 조선의 로켓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지난 12월 현장을 첫 공개하면서 베일을 벗었다. 현장의 생생함과 함께 이승렬 프로듀서가 말하는 〈신기전〉스토리를 싣는다.
※ 최후, 결전의 그날
침엽수가 빽빽하게 들어선 산등성이 아래 낮은 강이 흐르고 그 옆으로는 모래벌판이 펼쳐져 있다. 홀로 들어섰다면 겨울의 한기보다 적막함이 더 크게 느껴졌을 이곳에서〈신기전〉의 최후 결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2007년 12월,〈신기전〉이 경상북도 안동시 계평리에서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촬영현장을 공개했다.〈약속.〉.(98) .〈.와일드 카드.〉.(03)의 김유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신기전〉은 명나라의 견제와 압박 속에서도 조선 최초의 로켓포 ‘신기전’(神機箭)을 발명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날 공개한 장면은 영화에서 20분 동안 계속될 마지막 전투 신의 한 토막. 현장에는 어림잡아도 20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통제가 수월한 스튜디오도 아니고 드넓은 벌판에서 어떻게 저 사람들을 다 통솔할까 싶었지만 현장은 빠르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승렬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촬영 기간 8개월 동안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군사적으로 단련됐기 때문이라고.
오전 8시부터 촬영에 들어간 김유진 감독은 우리가 도착할 때쯤 홍리(한은정)가 여진족에게 끌려가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서너 번의 테이크 후에 내려진 오케이 사인. 다음 신은 명나라 과학자가 조선의 대신기전이 성공적으로 발포된 것을 보고, 전투에 패했음에도 과학자로서 경의를 표하는 장면. 대신기전의 공격으로 초토화된 명나라의 진영을 담기 위해 100여 명의 보조 출연자들은 시체가 되어 벌판에 누워 있었다. 원래는 300명이었지만, 매일 새벽 4시부터 분장에 들어가 하루 종일 야외에서 촬영하는 고된 일정 때문에 200명이 그만둬 100명만 남았다. 이어서 김유진 감독은 설주(정재영)의 홍리 구출 장면, 설주와 홍리가 화염에 휩싸인 적지에 서 있는 장면, 벌판의 한쪽에 설치된 블루 스크린에서의 액션 신 등을 더 찍은 뒤 이날의 촬영을 끝냈다. 이렇게 매일 여러 장면을 몰아서 촬영했음에도 마지막 전투 신을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20일. 하지만 이승렬 프로듀서는 만족한다......[중략]
※ 우리조상들의신나고통쾌한이야기
〈약속〉부터 함께 해온 김유진 감독과 이만희 작가, 이승렬 프로듀서가 ‘신기전’이라는 역사 속에 묻힌 조선 최고의 병기를 찾아낸 것은 두 번째 합작품〈와일드 카드〉를 막 끝낸 2003년이었다. “처음에는 칼싸움을 소재로 한 무협영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바랐고, 여러 소재를 찾던 중에 ‘신기전’을 발견하게 됐다.” 이승렬 프로듀서는 김유진 감독과 이만희 작가에게 신기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고, 세 사람은 조선의 숨은 역사를 영화화하는 데 합의했다.
그때부터 그들과 제작사(K&J엔터테인먼트)는 각종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당 60∼70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다.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책만 1년은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서와 문헌을 뒤지고 역사학자를 만나도 조선 초기의 시대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조선 시대와 관련된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세종 시절 양민의 삶이나 문화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상상과 추측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한 것은 아니다. “기록을 찾을 수 없더라도 다각도의 고증을 거쳐 실제 역사와 가장 가깝게 만들려고 했다.” 다행히 영화의 중심인 신기전에 대해서는 30년 넘게 신기전에 매달린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채연석 박사의 연구가 있었다. 그는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소신기전과 중신기전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바 있다. “그가 없었다면 영화는 힘들었을 것이다. 채연석 박사는 영화의 신기전 재현에 그간의 모든 연구를 쏟아 부었다.” ......[중략]
※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다
역사 고증만큼 어려웠던 것은 장소 헌팅. 제작진은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 순간부터 마지막 촬영이 끝날 때까지 전국을 돌아야 했다. 이승렬 PD는 “2년에 걸쳐 헌팅을 다녔지만 ‘조선 시대’를 연상시킬 이미지를 간직한 곳이 전국 어디에도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장소는 사실 다 차선책으로 고른 장소들” 이라고 어려웠던 시간을 회고했다. 촬영은 서울을 비롯해, 용인 민속촌, 안동, 제천, 남원, 태안, 완도, 순천, 속초 등 전국 17곳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때로는 촬영 1주일 전까지 장소를 찾지 못해 촬영 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순간도 있었다. 12월 공개했던 안동 촬영이 바로 그런 경우. “전투 신을 촬영할 장소를 찾지 못해 애먹고 있다가 촬영 1주일 전 그곳을 발견했다.” 마침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어서 제작진은 안동시의 허가를 얻어 절벽의 나무를 자르고 신기전을 설치할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중략]
글 하정민 기자 | 사진 안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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