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发表于 2005-6-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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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posted by 灰都 at 2005-6-7 05:44 PM:
8会吧。LH不是KBS的吗?图片上的台标是MBC的。想想还是三顺的。
对了,VV万事通,你晓得“张英子”究竟在韩国有什么特殊吗?
为虾米领班不要人叫她名字呢?
三顺说,真是有代沟(意思是这个啦),那这么说, ...
這種文化問題……장영자漢字名應該是張玲子,應該是第五共和國時代的人(所以可能要抽空看看那個電視劇了~,她跟她丈夫好像是詐欺犯~人家現在已經60嵗了,82、83年事發以後坐牢了~
張英子的照片
這是韓語的介紹:
이철희장영자어음사기 [李哲熙張玲子-詐欺]
요약
1982년 5월 4일, 이철희·장영자 부부가 일으킨 대규모 어음 사기사건.
언제 1982년 5월
누가 이철희·장영자 부부
무엇을 6,404억 원
어떻게 권력과 결탁한 어음 사기
왜 개인적인 부(富)의 축적
본문
1982년 5월 4일, 당시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장영자와 그의 남편 이철희가 어음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일어난 대규모 어음 사기사건을 말한다. 건국 후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사건이자 권력형 금융비리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으며,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병폐의 한 단면을 드러낸 사건으로 꼽힌다.
제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장영자는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자기자본 비율이 약한 건설업체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대여액의 2배, 최고 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서 할인하는 수법으로 총 7,111억 원의 어음을 유통시켰다. 이 가운데 어음사기 행각을 벌인 액수만도 6,404억 원에 달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른바 '장 여인 광풍'이 몰아쳤는데, 정계·경제계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특히 경제계에 불어닥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금융혁명'으로 일컬어지는 6·28조치가 단행되었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금융실명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사무총장이 물러나고, 법무부장관이 2번이나 교체되었으며, 이 사건과 관련해 31명의 피고인이 법정에 올랐으나, 그 중 11명만이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장영자·이철희 부부는 모두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이철희가 먼저 가석방된 뒤, 장영자는 복역 10년 만에 역시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장영자는 1994년 다시 100억 원대의 어음 사기사건으로 구속되어 복역하였고, 2001년 5월에도 220억 원대의 구권(舊券)화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세 번째로 복역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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