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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라] 멜로 드라마는 공식을 입는다
[매거진t 2006-11-07 08:00]
<구름계단> vs <독신천하>
지금까지 인기를 얻은 멜로 드라마의 공식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주인공과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의 공식, 혹은 인생이 꼬인 여자 주인공과 바람둥이 남자 주인공이 여러 사건들을 통해 진실한 사랑과 성공적인 커리어를 배워가는 이야기의 공식. 너무 흔해서 이제는 패러디나 비아냥의 소재가 되어도 이런 ‘성공 멜로 드라마의 공식들’은 여전히 견고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흔한 설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고난이 극 안에서 얼마나 구조적으로 설득력있게 해소되는가 이다. 개그를 차용하든 정통 멜로를 고집하든, 그 고난 극복기의 정점에는 시청자들의 경험이 공명하는 논리가 존재해야 한다. 황승현과 조지영 TV 평론가는 <구름계단>과 <독신천하>의 미덕과 한계의 지점들을 찾아낸다. 그들에게 두 작품은 드라마 보기의 재미를 새삼 일깨워준 작품이기도 하고, 현실감이 결여된 멜로 드라마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 편집자
우직해서 아름다운 <구름계단>
<구름계단>은 여러모로 불운한 드라마다. 우선, 시청률 40%를 넘나드는 주몽과의 정면승부를 속절없이 감당해야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신인연기자들의 과도하게 풋풋한 연기가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매몰찬 원성을 초반에 감내해야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구름계단>은 지금 한 자리 수 시청률에 고착된 채 대단원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구름계단>은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을 새삼스럽게 맛보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것은 <구름계단>이 탁월한 드라마였기 때문은 아니다. 복수를 기둥줄거리로 하면서도 복수의 동기나 목적이 종반부까지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결국 극의 긴장감과 속도감이 함께 떨어졌던 점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답답할 정도로 따뜻한 인물들
하지만, <구름계단>은 요즘 보기 드문, 정겨운 종합선물세트같은 드라마다. 마치 세련되지는 않았어도 더없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오래전의 종합선물세트처럼, <구름계단>은 복수와 정의, 사랑이라는 ‘새롭지는 않지만 소중한’ 덕목들을 골고루 형상화하기 위해 우직하게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구름계단>이 와타나베 준이치의 동명원작에 도헌이라는 인물을 추가시킨 데에서도 이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종수, 정원, 도헌의 삼각관계와 윤희, 종수, 정원의 삼각관계를 중첩적으로 형성시키기 위한, 다분히 멜로장르를 의식한 상투적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구름계단>은 복잡하게 얽힌 다층적인 애정관계로 시청자의 눈길을 유인하는 ‘예측가능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도헌(김정현;)의 존재는 <구름계단>을 촌스러울 정도로 순수하고 따뜻한 드라마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사랑을 잃은 도헌은, 통상적인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종수(신동욱;)에게 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수와 정원(한지혜;)의 도피를 오히려 도와주는, 흔치 않은 결정을 내리는 도헌이나, 종수에게 배신당했음에도 결국 종수를 용서하는 윤희(임정은) 모두 극단적 대립 대신에 결국 이해와 배려를 선택한다. 다른 드라마에서였다면 극단적으로 첨예화되었을 갈등이 비교적 평화롭게 진정국면을 맞는 것이다.
‘인간적 원칙’에 대한 소박하지만 분명한 확신
종수의 복수극도 손에 땀을 쥐는 아슬아슬한 긴장감 대신에, 사랑의 기쁨과 복수의 명분 사이에서 흔들리는 종수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진행된다. 등장인물끼리 서로 악에 받친 표정으로 가시돋친 대사를 하염없이 주고 받으면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손쉽게 자극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구름계단>은 오히려 보다 격렬하고 보다 자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부분마저도 애써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려낸다. 이것은 이 드라마에 악역다운 악역이 없었다는 것, 사건다운 사건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대중적 흡인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구름계단>의 이러한 ‘무자극성’은 분명 단점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그만큼 <구름계단>이 착하고 우직한 드라마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구름계단은 단순히 복수를 둘러싼 미스터리에만 주력하지도 않고, 등장인물간의 진부한 사랑싸움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구름계단>은, 의료적 평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소박하면서도 선명하게 강조한다. 종수의 복수는 가난한 사람들도 의료적 권리를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홀대받는 ‘인간적 원칙’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 복수의 동기와 방식이 비현실적일지언정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성과 효율성이 신처럼 숭배되는 요즘같은 시대에, 촌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인물들이 모여 대책 없이 선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구름계단>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드라마일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구름계단>처럼 답답할 만큼 우직하고 따뜻한 드라마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글 황승현
독신 없는 <독신천하>, ‘연애천하’된 사연
제목이 중요하다. 제목은 결정적으로 내용을 요약하고, 암시하며, 무엇보다 제목 뒤에 펼쳐질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책임진다. <연개소문>의 제목을 ‘김유신’이나 ‘수양제’로 바꾸라던 원성(?)도 제목의 절대적인 숙명 때문이다. 경쟁드라마(<주몽>)와의 대진운도 없긴 했지만, <독신천하>는 내용과 제목의 맞지 않는 궁합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독신의 삶과 고민’을 순진하게 기다렸던 시청자는, 기대감을 접어야 할 것 같다.
독신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독신천하>의 주요 등장인물인 여자 셋, 그리고 남자 셋은 표면상 ‘독신’이다. 그런데 이들은 과연, 독신인가? 그들은 다만,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싱글남녀일 뿐이다. 특별히 독신주의의 신념(?)이 있는 인물은 지헌(윤상현) 한 사람 정도이고, 정완(김유미)은 스스로 ‘결혼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고 있지만, 그 근거는 희박하다. 나머지 네 남녀는 모두 나름의 결혼의 로망 혹은 의지가 있다. 즉, ‘독신’이란 결혼까지 가는 과도기에 있는 남녀들을 일컫는 말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등장인물 모두가 밤낮없이 ‘연애’와 ‘연애 잘 하는 법’에 몰두한다. 마치 ‘독신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 것처럼. 시청하면 다 나온다. 사실은 이 드라마, ‘연애천하’였던 것이다.
소위 ‘결혼적령기’를 지나 버린 여성들은 어찌 보면 비슷한 공감대를 안고 산다. 동기가 하나 둘씩 대오(?)를 이탈하기 시작하고 받은 부케들이 시들어갈 때, 친구 아들의 돌잔치에 초대받기 시작하고, 어리버리 시작한 사회생활에 연차는 쌓이지만 연봉은 시원치 않고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기 마련인 공감대. 그러나 일과 사랑, 그 어느 것도 불투명하고 막연한, 떠나기도 남아있기도 어정쩡한 시기에 그 혼돈의 터널로 막 진입하는 <독신천하>의 세 여주인공들에겐 ‘이대로 인생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독신천하>의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 어려운 것은, 그들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사회 생활’ 즉, ‘조직’과 거의 유리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업 사회에서의 고군분투가 그려질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해 정완이 드라마를 잘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드러나지 않으며, 혜진(문정희)의 직업적 노력들은 역설적으로 ‘다 결혼을 잘하기 위한’ 장치처럼 쓰일 뿐이다. 독신의 가능성을 타진할 때 그 1순위에 올라갈 ‘경제적 자립’에 대한 고민도 진공 상태에 있다. 그러면 거의 유일하게 남은 고민은? 역시, 사랑인 것이다.
사랑따윈, 꼭 필요해
맨하탄에 사는 캐리(<섹스&시티>)처럼 정완도 핸드백에 콘돔을 가지고 다닌다. 다만 차이점은, 정완은 그걸 쓸 일이 없다는 점. 7년을 수절(?)하는 남자친구 현수(이현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정완도 별로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같은 독신주의지만, 지헌은 바람둥이고 정완은 처녀여야 한다는 오래된 한국식 관행(?)의 소산이다. 설정과 캐릭터의 어정쩡한 변주는 이렇게 종종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바이러스 감염을 고쳐준 것도 아니고 포맷을 해준 것도 아닌, 겨우 ‘빠진 랜선 하나’ 연결해준 현수에게 정완이 ‘맥가이버같다’는 칭찬을 날리는 것은 현수에겐 몰라도 시청자들에겐 괴로움이 된다. 현수의 소중함보다는 정완의 무식함이 먼저 와 닿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하고 과격하고 순진한 여자라는 점에서 정완과 영은(유선)의 캐릭터는 종종 겹쳐보이기도 한다. 주요인물의 성격이 중복된다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그래서 뒤늦은 감이 있어도 <독신천하>를 감상하는 법은 먼저 제목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다음으로 누가 누구와 연결될지를 점쳐보는 것이다. 나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찬 멋진 남자/여자들이 줄을 선 일상, 잘 꾸며진 오피스텔의 안락한 소파 같은 저들의 삶을 아주 잠시나마 동경하는 것, 거기에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도시남녀의 가벼운 모험담을 지켜보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글 조지영
(글) 황승현 ( TV평론가(t-viewer))
(글) 조지영 ( TV평론가(t-vie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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