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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上
2. 독백
윤미주.. 이 여자!
의사라는 직업에 영 어울리지 않게 천방지축에다 입만 열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말.. 말..
내 목숨을 구해주긴 했지만 내 앞에서 저렇게나 대책 없이 당당한 여잔 처음 본다.
유진이도 내 앞에선 마냥 편안해하지 않았는데..
대놓고 날 두목이라 부르질 않나, 내 문신을 만져보질 않나..
급기야는 자신이 사랑스럽지 않느냐는 질문까지 던진다.
- 내 참.. 사람스럽기나 했으면 좋겠네.
이 여자.. 애인이 있나부다.
저런 무대뽀 정신의 여자에게 무슨 애인이 있기나 할까?
하지만 어린 동생들의 말을 살짝 엿들으니
바닷가에서 얼굴 빨개져가며 어떤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단다.
하~! 세상일은 알 수가 없어.
하긴.. 이 여자가 내 목숨을 구하고..
내가 이 여자 집에서 잠시 은신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 여자의 아버지께 고맙단 말을 들었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 같은데..
사람목숨에 관여하기 싫다며 바닷가에서 울부짖던 그 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때마침 지난번 일로 미안하다며 울먹이는 유진이의 메시지를 듣고 나니
더 마음이 심란해진다.
내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출생부터? 고아원에서 뛰쳐나오던 그 때부터? 강회장의 수하가 되면서부터?
그 여자도 나처럼 길 잃은 한 마리 어린양일까? 그녀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웬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져 모닥불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길 잃은 어린 양은 어떻게 되었냐는 내 질문에..
결국 길을 찾게 된다는 그녀의 대답..
길을 찾았댄다. 하느님은 공평하시단다.
제기랄..! 또 뻔한 소리..! 그렇게 친절한 하느님은 그런데 왜 나를 고아로 만들었냐구..
자애롭다는 고아원 원장이 죽이고 싶도록 싫어 고아원을 뛰쳐나온 지가 20여년..
그 긴 세월동안 난 계속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 여자의 반달 같은 눈이 놀라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보인다.
동정은 바라지 않아.
그런데.. 직업도 반듯하고 아버지도 목사인 저 여자가
어째서 나처럼 길을 찾지 못한다는 걸까?
유진이가 찾아왔다. 우는 그녀를 달래려 안아줬다.
때마침 천사장이라는 작자를 만나러 급히 떠나야 한다.
갑작스런 출발에 놀란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그 여자.
고맙다는 이야기 정돈 해주고 싶었는데..
유진이도 있고 웬지 모르게 그 여자완 다신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될 것 같다.
내 속을 너무 많이 보여준 때문인가?
내 이름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는 천사장..
뭣 모르고 기고만장한 저 놈이 피를 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줘야겠지.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이런 일들.. 두려운 건 없다.
지금 내가 할 일은..
강회장님의 뜻을 따라 합법적인 회사를 인수하는데 온 힘을 다하는 것일 뿐..
풀이 죽어 계약서에 사인하는 천사장을 보니.. 기분이 상쾌하지만은 않다.
초콜렛 한 조각으로 더러운 이 기분을 떨쳐내 본다.
해남도라..
날 죽이려 한 놈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면 내가 미끼가 되어주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지.
때마침 세현엄마가 찾아와서 자기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을 해댄다.
내가 내민 손수건에 껌까지 뱉어가면서.. 무식하고 정 떨어지는 여자다.
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스물스물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아내 본다.
모전자전인가?
지들이 그렇게도 경멸해마지 않는 깡패..
그런 깡패 아버지를 둔 덕분에 무임승차, 호의호식하고 사는 지들이
날 경멸할 자격이 있는 건지..
20여년 전 죽여 버리고 싶었던 고아원 원장보다도 더 쓰레기 같은 족속들이다.
어차피 해남도로 가기로 했던 거.. 덤으로 세현이도 데리고 오면 될 것도 같다.
꿈에서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놈을 만나야 한다는 건 싫지만 말이다.
밥 잘 챙겨먹으라는 아내 같은 상택이 형의 배웅을 받고 있는데
공항로비로 들어서는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윤미주. 그 여자다.
지난번 제대로 된 인사도 못했는데..
화가 났는지.. 내가 꼴도 보기 싫은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말을 아낀다.
고마웠단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날 쳐다보지도 않는 그녀에게 좋게 말이 나가지가 않는다.
새 옷도 사 입고 돈까지 환전해가며 가슴 설레어 하는 그 여자.
보기와는 달리 순진한 구석이 있는 것도 같고,
짜장면 먹으러 중국까지 오라는 남자를 따라갈 정도면 속물인 것도 같고 종잡을 수가 없다.
나의 빈정거림에 속사포처럼 대꾸를 하는 그녀.
역시 내가 예전에 만났던 윤미주답다.
설마는 꼭 사람을 잡지.
비행기 안 그녀의 옆 좌석이 바로 내 자리란다.
오 마이 갓~!
아니나 다를까 쉴 새 없이 입을 놀려 내 심사를 긁어대는 그 여자.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기도 얼마나 잘 먹는지..
나도 모르게 내 음식이 담긴 접시를 그녀에게 주었는데 거절당했다.
그럼 그렇지.
순간 그녀를 배려하려 했던 내 손목을 때려주고 싶다.
묵직한 뭔가가 내 어깨에 기대온다.
안대를 하고 잠이 든 그녀의 머리다. 허~! 이 여자가...!
하지만 내 어깨까지 빌려 이렇게나 편히 잠든 그녀를 밀쳐내고 싶지 않은 건 왜일까?
남자친구가 보낸 고급 리무진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는 그 여자.
역시 그 여잔 속물이었단 생각에 ‘직업이 장의삽니까?’라고 빈정거려버렸다.
그런데.. 세현이를 만나러 갔다 또 다시 그녀와 마주쳤다.
그 여자의 애인이 세현이었다니..
- 애인 아니예요. .. 돈 좀 빌려주실래요? 땅 계약금으로..
완전 날강도가 따로 없다 생각했지만..
생애 처음의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코가 석자나 빠진 그녀가 어쩐지 가여워
호텔을 잡아주고 밥도 같이 먹자고 했다.
키싱구라미도 모른다고 그새 면박을 주는 그녀에게 짜증을 냈지만
세현이 집을 금방 나온 걸로 봐서는 돈만 밝히는 완전속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이든 넘겨짚는 습성을 가진 그녀.
이봐~! 난 세현이 같은 놈에게 친구의 ‘친’자도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
그 놈을 처음 만난 날 쓰레기 보듯 날 대하던 그 면상을,
그 수모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여자의 관광 가이드를 해주기로 했다.
아직 내가 찾는 그 놈들은 안 나타나는 것 같고
그녀와 함께 있음으로써 누군지 모르는 상대에게 여유롭게 보이는 이점도 있겠지만
낯선 이 땅에서 웬지 그녀를 챙겨줘야 할 것 같아서이다.
보이는 모든 것에 즐거워하는 그 여자.
그녀가 즐거워하는 모든 일들은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어색함 자체이지만..
웬지 나까지 조금씩 즐거워지려한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자신을 가이드해준 이유를 묻는다.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녀가 필요해서 그랬다고 하니..
자신을 이용했냐며 불같이 화를 내는 그녀..
돌아서가는 그녀의 손목을 나꿔채며
세현이를 불러낼 역할을 한 번 더 맡아달라는 협박 같은 부탁을 해버렸다.
황당해하며 화를 내고 가버리는 그녀가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오더니..
걱정스러워 하며 날 찔렀던 놈들의 사진을 디카에서 보여준다.
이놈들이었구나.. 생각한 순간 갑자기 사방에서 몰려드는 조직원들.
덜덜 떨고 있는 그녀가 걱정스러워 급히 도망가라고 일러주었다.
오냐! 기다렸다.
죽기를 각오하고 정신없이 싸우다보니 그녀가 조직원들에게 끌려가는 게 눈에 띈다.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오직 그녀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뿐!
꽤 오랜 추격전 끝에 그녀를 구하긴 했지만 우리가 있던 곳은 중국 조폭 조직의 소굴..
너무 무서워서 내 곁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는 그녀를 먼저 가라며 그냥 돌려보냈다.
이런 곳에 더 이상 그 여자를 있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중국의 조직보스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나와 보니
무섭다던 그녀가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보고 재빨리 달려오는 그녀..
예전에 칼에 찔렸던 내 상처가 혹시 덧나지 않았나 살펴보며 나를 걱정해준다.
- 바보예요? 또 전처럼 다치면.. 구할 사람은 나 밖에 없잖아요.
미안한 건 난데.. 걱정스러운 건 그 여잔데..
갑자기 심장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 이 느낌이 낯설기만 해서
덜덜 떨고 있는 그녀에게 양복 상의를 얼른 벗어 덮어주고 자리를 떠버렸다..
피로하다.
모든 것이 얽힌 느낌..
정신을 가다듬으려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그녀와 안면이 있다던 그 그린메일러가 생각났다.
급히 그녀에게 물어보니 세현이의 집에서 본 여자란다.
세현이를 만날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날 만나려 하지 않는 세현이를 만나려면 이 여자의 도움이 필요할 거 같다.
불쾌하겠지만 그녀를 다시 한 번 이용하는 수밖에..
예상대로 부탁 아닌 부탁에 불쾌해하는 그녀에게
고아원 땅이 압류에 들어갈 거라는 사실을 알리며 압박해봤다.
어쩔 수 없다. 이 여자를 조금 이용해서 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사실 그녀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그녀의 고아원 땅을 헐값에 다른 곳에 뺏기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지..
‘혹시... 차압 건 사채업자가 당신이예요?’
- 연락할 이유 생겼으니까 전화해요. 세현이한테...
‘당신 살리는 게 아니었어..’
어떤 종류의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
이 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들어온 게 수모와 폭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그 한마디에 이상하게 내 가슴이 저려온다.
그녀를 앞세워 세현이를 만났다.
‘깡패 새끼가 협박만 할 줄 알지 언제 부탁이란 걸 해봤어야 알지.’
이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깡패’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온다.
강세현! 넌 내 상대가 안돼. 알어?
호텔 내 방문 앞에 그녀가 서있다.
세현이와 데이트를 즐기고 온 걸까?
대가를 지불하긴 했지만 내가 두 번이나 이용했던 그녀는
힘 빠진 미소를 지으며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한다.
가슴 저 편에서 또 다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이 여자..
키싱구라미를 들먹이며 내 넥타이를 잡아끌던 당돌한 여자.
옆 집 비밀번호까지 알아내고 그 남자친구의 행동까지 질책하는 오지랖 넓은 여자.
고아원 땅을 팔아 병원을 지어 돈 많이 버는 게 꿈인 속물인 여자.
그럼에도 돈 많은 세현의 집에서 나와 버린 알 수 없는 여자.
직업이 의사이면서도 사람 목숨에 관여하기 싫다며 울부짖는 여자.
입만 열면 폭포수처럼 말을 쏘아대는 여자.
내 앞에서 무서울 게 없는 유일한 여자.
앞 뒤 안 가리고 대책 없이 명랑해서 가끔은 조금 모자란 게 아닌가 싶은 여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뻔한 상황에서도 날 걱정해주는 여자.
날 두목이라 부르는 여자.
내 목숨을 구해 준 여자.
나처럼 길 잃은 양일지도 모르는 여자.
얼어붙었던 내 가슴 밑바닥이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
안돼..
안돼..
지금은 더 이상 애절한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면 안 될 것 같다.
‘고마워요. 고아원 땅 그냥 날로 먹을 생각은 없어요. 갚을게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꼭 갚을게요.’
- 당연한 거 아닙니까?
최대한 냉정하게 말하며 그녀가 더 이상 내 시야에 보이지 않도록 문을 닫아버렸다.
딩동.. 딩동..! 연이어 울려대는 벨소리.
그녀일까? 젠장.. 낯설기만 한 이 떨림이 두려워진다.
** 사진 몇 장..
그렇게 강재의 가슴엔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내 어깨에 전해져오는 그녀의 숨소리..
뭐든지 즐거워하는 그녀를 보니.. 나도 더불어 기분이 좋아진다.
당신을 가이드해 준 이유? 여자랑 같이 있으면 한가해 보일 테니까..
하나, 둘, 셋 하면 무조건 뒤돌아 뛰어요..
바보예요? 또 다치면 구해줄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혹시.. 당신이 차압 건 사채업자가 당신이예요?.. 당신 살리는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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