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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원 "내시는 여럿이지만 왕은 단 한 명"
노컷뉴스 | 기사입력 2007-09-26 09:01
[노컷인터뷰] '왕과 나' 성종 역할로 사극 첫 도전한 고주원 "내시들과 왕의 이야기에요. 내시는 여럿이지만 왕은 한 명이잖아요." 연기자 고주원(27)의 뚜렷한 어조로 말했다. SBS 인기 사극 '왕과 나(유동윤 극본·김재형 연출)'의 고주원은 드라마 무게 중심이 '내시'에게 기울어지고 주변의 관심까지 온통 한쪽으로 몰리는 것에 다소 서운한 눈치였다. '왕과 나'란 제목에서 드러나듯, 내시와 왕이 함께 있다는 걸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극의 영원한 엑스트라 내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왕과 왕비 사이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밀도 있게 그려 호평받는 '왕과 나'에서 고주원은 조선시대 성군 성종으로 나섰다. 역사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꽃을 피운 시기로 기록되지만 극 중 성종은 어머니로부터의 억눌림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마음 졸이며 방황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기존 사극과 달리 '왕과 나'는 권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내시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왕은 때때로 내시들의 선택에 몸을 맡긴다. 때문에 고주원이 연기하는 왕은 지금까지 봐왔던 군주의 모습과는 다르다. 유약해 보이기도 한다. "성인이 되기까지 성종은 여러 아픔을 겪었어요. 어릴 때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인과 혼인할 수 없었고 할머니(정희왕후)와 어머니(인수대비)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장하죠. 인생에 낙이 없는 임금이에요." 유년기를 거쳐 성인이 돼 브라운관에 등장한 성종은 여인들의 치마폭에 휩싸여있다. 연일 음주 가무에 취해 시간을 보낸다. 고주원은 이런 성종을 두고 "어머니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얽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놉시스 읽는데 다른 인물은 들어오지 않았어요, 오직 성종이죠" 물론 마냥 방탕한 생활에만 빠져 지내는 것은 아니다. 지난 24일 방영한 10회에서 성종은 "상대를 방심시켜 개혁의 때가 올 때까지 낮춘 삶을 살겠다"라는 말을 꺼내며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주원이 사극에 처음 도전하며 성종에 매력을 느낀 이유가 바로 이런 모습 덕분이다. "현대물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내용이라 연기하는 건 마찬가지에요. 시놉시스를 읽는 데 다른 인물은 들어오지 않았어요. 오직 성종이 지닌 다양한 감정의 변화만 눈에 띄었죠. 거기다 왕 역할이라 더 매력을 느꼈죠." 고주원은 '실존인물' 성종을 표현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지만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역사 속 인물인 것보다는 대본 안의 성종의 모습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해요"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면서 사극에 임하는 연기관을 덧붙였다. "실존 인물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면 연기하는데 오히려 어려워요. 드라마는 픽션이 가미될 수밖에 없는데 역사적 사실을 머릿속에 넣으면 인물을 새로 창조하는데 방해돼요."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픽션, 역사와 다른 건 당연" 고주원은 '왕과 나'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정말 이해 못하는 부분이에요.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픽션이죠. 물론 그 시대의 소품처럼 고증 해야 할 부분이 잘못됐다면 그건 왜곡이죠. 그런데 스토리는 아니에요. 시청자가 작품을 보는 기준이 다양한 만큼 극으로 표현할 때 각색하는 건 당연하죠." 고주원은 몇 차례나 "허구란 걸 고려해 봐 주세요"라고 부탁하며 "실존 인물의 이름만 빼고 새로운 캐릭터로 생각하고 본다면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도 했다 역사왜곡 논란을 이야기하던 중 경쟁작인 MBC '태왕사신기'를 거론하며 "'태사기'가 퓨전사극이라고 해도 고조선과 고구려를 담았는데 역사왜곡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잣대로 극을 분석하는 시선을 접하는 배우가 갖는 의아함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50부작으로 기획된 '왕과 나'는 흥행 여부에 따라 연장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다. 방영 4회 만에 시청률 25%를 넘어서며 관심을 끄는 상황이라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서울 경복궁과 용인 한국민속촌, 경북 문경에 세워진 오픈세트를 오가며 촬영에 임하는 고주원은 현대극보다 몇 배의 노력을 쏟아야 해 어느 작품보다 마음의 애착도 강하게 느끼는 중이다. "열심히 하면 작품이 끝나고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 한 층 성숙할 기회라고 믿습니다." 내년 여름까지는 꼼짝없이 조선시대 임금으로 살아야 할 고주원은 배우로서의 성장을 꿈꾸면서도 그다음 걸어야 할 길까지 발 빠르게 구상해 놓았다. 지금까지 연기한 부잣집 외아들, 촉망받는 대기업 사원이 아닌 '뒷골목 양아치'에 마음을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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