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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上的一篇长文章,,谁来翻翻大概意思~~~~
< 청춘의 희망이 자라는 드라마, 세계의 붕괴를 꾀하다>
할미넴이 말한 이게 다 어른들 때문이다가 사건 전개의 키워드였네
보스를 지켜라는 재벌과는 동떨어진 듯 보이는 은설이,
곧 이 부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노동자(은설)이자 소비자(은설부)임을 보여주는 이야기야.
말 그대로 갑이지. 그래서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도 은설이야. 우리가 더 쪽수가 많으니까.
또 은설은 휴학하고 알바를 해야만 하는 이 땅의 모든 무명 청춘들의 대리인이기도 해.
그런 은설이가 부와 권력은 손에 쥐었지만 기성세대로 인해 곪아버린 세상 안에서 신음하는 아이들을 만나.
그리고 이 상처받은 영혼들의 성장을 이끌어내서 기어이 저 세계를 붕괴의 위험으로 몰고 가지.
이 드라마 2막에서는
이제부터 붕괴하는(혹은 해야하는) 세계와 새롭게 떠오르는 세계 사이의 갈등을 그리겠다고
선전포고한 거나 다름없어. 세대 전쟁이지.
물론 선전포고의 대상은 청춘을 팔아서 세계를 유지하려는 윗세대들이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희망의 꿈을 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서문이었지.
그리고 이제서야 은설이가 왜 그렇게 힘들게 그려졌는지 알겠어.
이 여주의 역할이 ‘그들이 사는 세상' 안에 있는 가능성 있는 청춘들 중
누군갈 깨닫게 해야 했고, 누구는 치료해줘야 하고, 누구랑은 친구가 되어줘야 하는 거였으니까
이 어렵고 험난한 길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대체 그 반항과 성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줘야 했던 거였어.
발뒤꿈치가 까지도록, 현실이란 굴레에 마음이 불편한 것도 모두 감수해가며, 귀찮은 것까지 그렇게 전부.
하지만 그런 그녀도 말해. 기대지마! 이 외침이 세계의 전복을 가능케 한 거야.
피 빨리는 청춘이 들고 일어난 거지.
차무원이 제일 처음 은설이를 발견한 건 무원이의 가능성과도 연결돼.
무원이는 이 세계에 몸을 담고 있지만 이 세계의 흥망엔 무관심했어.
그에게 이 세계는 재미없고, 지루한 세계였고 그래서 늘 살짝 물러나 관망하는 쪽이었지.
그런 이 남자가 은설로 인해 윗세대와 가장 먼저 다르게 살겠다는 것을 선언하고,
조건과 이유로 뒤덮인 나윤이와의 관계를 끊어내고는,
은설이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재벌을 바라보는 그녀의 부정적인 시선을 수용해.
무원은 은설이 살짝만 터치해도 깨닫고 능동적으로 성장에 앞장 설 수 있는 인물이고
그래서 차회장과 정면으로 부딪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거지.
리더로 치자면 의사소통과 민주주의에 강하고 조직을 정화할 의지를 가진 인물인거야.
이제부터 무원이와 같은 젊은 피가 진짜 경영권에 욕심내고 노력하면 어찌 되는 지 보여주겠지.
능력 있고, 멋진 남자가 개념까지 탑재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저 세계는 달라질 수 있을까?
지헌이는 심각한 공황장애를 겪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인물이야.
리더로서는.. 아직 사회성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도 없는 상태인거지.
이제 알바를 하면서, 상처와 아픔이 있는 청춘들의 삶을 바로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자신의 아픔과 고통뿐만이 아니라 다른(혹은 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상처도
이해하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지. 지헌이의 성장폭이 넓어지는 거야.
은설이가 좋은 회장님의 조건을 생각나는 대로 지헌이에게 읊던 모습 기억나?
아직은 모든 게 힘들 그를 은설이가 중간에서 비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며 보좌할거야.
그리고 그런 그녀의 도움을 받으며 지헌이가 나아가는 길에도 분명한 의의가 있어.
노동운동의 현장을 본 적 있어? 힘들지만 여기서 겪는 경험은 뼈에 각인돼.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서 앞으로의 내 삶을 고민하게 만들고 날 채찍질하지.
지헌이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강한 리더가 될거야.
차회장과 신사장, 황관장은 구시대의 유물이야.
이들은 새 시대의 도래를 방해하고, 그 시대의 의미를 자각하지 못 하는 이들이지.
차지헌과 차무원, 서나윤은 이런 기성세대의 억압 아래 깨어나지 못 하고 있었던 거고.
근데 아직도 이들은 아이들을 생각한다는 핑계로 이들이 조속히 자기들의 세계로 돌아오길 원해.
그리고 이들의 행복을 위한답시고 정당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고 있지.
정작 아이들이 아프고 힘들고 상처받은 것에는 관심가지지 못한 채 말이야.
무원이의 일탈로 속상한 신사장이나 지헌이의 공황장애를 알게 된 차회장도
결국은 자기 생각 밖을 탈출하지 못 하고 그저 잠깐의 동지(부모)였다 금방 적이 되는걸 봐..
부리던 비서가 자길 배신했는데도 그냥 '차봉만 많이 죽었다'고 반응하는걸 보라고.
이들에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바꿀 수는 없는 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거야.
그래서 진정한 가족, 진정한 동료, 진정한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결국은 갈라지는 게 이들의 한계지.
누가 더 실속 있는지가 서로의 결속에 유일한 이유니까.
그에 반해 그들의 아이들은 달라.
지헌이랑 무원이, 나윤이는 그들의 부모 아래서 저 야심을 배운 게 아니고
그 야심에 상처입고 그 생채기로 제대로 된 삶의 만족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왔어.
지헌이의 엄마 문제, 무원이 부모님의 정략결혼, 나윤이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인물들을 자라지도 못하게 만들고, 갇힌 세계 안에서만 사고하게 만들었거든.
그렇게 윗세대는 그들의 자녀를 희생양으로 삼으며
그저 이 아이들로 대를 이어 이 세계를 유지하려는 욕심만 가득했던 거지.
하지만 저 분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견고하지 않은 세계에서
성장을 거부하던 아이들이, 자기가 속한 세계를 부정하는 아주 건강한 유혹을 만난거야.
노은설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은설이가
우주돌맹이처럼 강렬하게 이들의 머릿속에 박힌 이유는 간단해.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하게 원하는 것들의 성취를 위해 노력하고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인물을 그 전엔 만난 적이 없는거야.
소싯적에 놀아본 적이 있는 은설이는 무원이와 그냥 놀아줘.
근데 무원이는 이제 어머니의 기대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을 따르게 돼.
스스로를 강하게 지켜낼 줄 아는 은설이는 지헌이를 보살펴줘.
근데 지헌이는 이제 장애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해.
명란이라는 좋은 친구를 둔 은설이는 나윤이의 친구가 되어줘.
근데 나윤이는 이제 부모님의 그 참견에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자신을 주장해.
여기서 그치지 않지. 이 좋은 변화가 서로에게도 영향을 미쳐.
무원과 지헌은 다시 진정한 가족이 되려고 하고,
무원과 나윤은 다시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해.
다들 서로의 성장에 적극적 동반자이자 지지자들이지. 나비효과가 일어난 거야.
그리고 은설일 알게 된 무원과 지헌, 나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
진보의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 이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거지.
이제 무원이는 은설이를 보면서 이곳을 바꾸기 위한 힘을 가지기 위해 권력에 다가갈 거야.
지헌이는 결국 낙하산 알바로밖에는 취직이 불가능한.. 우리들의 세계로 내려와.
둘이 이제 깨닫고 변화를 위한 시작점에 섰는데
하나는 위로 가서 기성세대와 정면승부를 노리고
하나는 아래로 내려가 우리 세계에서 무언갈 배우려고 해.
누가 더 맞는 접근인가 고민할 필요는 없어. 왜냐면 이들은 연대해야 하거든.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자와 아래에서부터 부딪히며 이겨내는 자는
함께 이전까지의 세대를 종결시키고, 현재 자신들의 가치를 종합해서 새로운 미래를 제시해야해.
그 미래는 더 이상의 부정과 비리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이고, 여기의 주인은 지금의 이 청춘들이니까.
물론 한 번에 바뀌진 않겠지.
하지만 설령 실패해서 또 다시 상처 받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상처는 과거의 상처와는 달라.
이 영광의 상처는 자랑스럽게 이 청춘들의 고민이 담긴 현재를 지지해 줄테니까.
과거가 다시 우릴 엄습해도 그때는 또 도망치면 된다는 무원이의 말을 되새기면 돼.
같은 청춘으로서
그렇게 새로 태어날 세상을 함께 만들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어.
다른 세계를 향한 갈망과 희망이 내 마음 속에도 뭉게뭉게 피어나서
어제 참 행복했다면 횽들 믿을래?
보스갤 '끌림그리고봄'이라는 횽이 쓴 글인데, 이거 읽으니까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라서 가져와봤어. 이렇게 글 잘쓰는 사람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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