找回密码
 注册

QQ登录

只需一步,快速开始

搜索
楼主: 醉里春归

【2007KBS2】【魔王】【已播毕】【严泰雄 朱智勋 申敏儿】〓原谅我 也原谅你〓

  [复制链接]

35

主题

6521

回帖

8592

积分

社区元老

积分
8592
发表于 2007-5-31 22:45 | 显示全部楼层
我猪回来了

0

主题

891

回帖

874

积分

黄金长老

积分
874
发表于 2007-5-31 22:49 | 显示全部楼层
原帖由 坚野零 于 2007-5-31 21:29 发表
在电视屏幕里看见第一集的律师
我居然有一种恍如隔世的感觉

偶的20集魔王还有宫都在电脑里呢
等着闭关没办法上网时解馋看看呢~
那时候才叫真正的恍如隔世

0

主题

756

回帖

914

积分

黄金长老

积分
914
发表于 2007-5-31 22:53 | 显示全部楼层
原帖由 亦非台 于 2007-5-31 22:45 发表


就象石头一年后去的澳大利亚

再回首已百年身



这个比喻。。。
殉情索需要资格滴

原来真正12年一个轮回的其实是海因


PS,云白。你内不知道从哪层深洞里挖出来的图勾起了我无言的记忆

0

主题

5

回帖

27

积分

初级会员

积分
27
发表于 2007-5-31 22:53 | 显示全部楼层
这片子很好看.很同情这两个人.遇到坎坷命运的人应该如何对待  
我也是遇到坎坷命运的人.没有希望的未来,痛苦的现在.

146

主题

4543

回帖

1万

积分

★超级版主★

見賢思齊 見不賢而內自省

积分
11550
发表于 2007-5-31 22:55 | 显示全部楼层
All From:http://www.cyworld.com/bolll (魔王造型师)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생일파티.

민아의생일파티도 함께..
태웅오빠의 파뤼후 그 다음날
촬영중에 다시열린 공동생일파티.ㅋ


                               
登录/注册后可看大图


태웅오빠의 버쓰데이.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준표오피스텔 촬영후 이어지는
생일축하쏭과 함께 케익절단식 ~^^

ㅋㅋㅋ

우리는 정말.. 맨날 생일파티만 하는것 같다,. ㅋ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중이신 감독님과
그 곁에 울 스탭들..

_07.3.05 강남대학교


                               
登录/注册后可看大图


귀여운 영철이의 바가지머리.
결국 오빠는 모든걸 체념하고 포기한듯
바가지머리에 가까운 컷트를 치고와서는
머리를 잘랐다고 나에게
칭찬해달라는 반짝반짝하는 측은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다.
ㅋㅋㅋ

기념으로 오리지널 영철이버전 자료사진 찍기.

[ 本帖最后由 lalanono 于 2007-6-4 14:26 编辑 ]
Cherish what you have!!
本人此ID仅限韩剧社区使用,其他网站任何讨论板块出现的相同ID均非本人使用。

146

主题

4543

回帖

1万

积分

★超级版主★

見賢思齊 見不賢而內自省

积分
11550
发表于 2007-5-31 23:02 | 显示全部楼层
All From:http://www.cyworld.com/bolll (魔王造型师)


                               
登录/注册后可看大图

난 유난히도 영철이가 나오는 씬이 좋다.
그래서 일까.
무엇보다 모니터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난다.

영철이를 연기하는 재완오빠는
모니터에서는 늘 다른사람 같았다.

재완오빠는 너무나 자상한 사람이다.
크고 이쁜눈을 가졌고
가끔은 엉뚱함과 장난기로 나를 많이 웃게만들어줬다.^^

너무나 좋은사람~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조명셋팅의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들였던 씬.
저 끝의 복도부터 전기가 팍 팍 팍' 들어온다는 설정..

덕분에 울 조명팀은 스탭들이 저녁을 먹으러 간사이
저녁을 짜장면으로 대신하며 셋팅을 했다.


                               
登录/注册后可看大图

ㅋㅋ

다들 재각각

                               
登录/注册后可看大图


_여의도 준표오피스텔 촬영중..^0^/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사진기를 들이대자
경직된 표정의 순기오빠.
부끄러워하는 미선언니.
ㅋㅋ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좋아라하는 사람들.

[ 本帖最后由 lalanono 于 2007-6-4 14:28 编辑 ]
Cherish what you have!!
本人此ID仅限韩剧社区使用,其他网站任何讨论板块出现的相同ID均非本人使用。

146

主题

4543

回帖

1万

积分

★超级版主★

見賢思齊 見不賢而內自省

积分
11550
发表于 2007-5-31 23:05 | 显示全部楼层
All From:http://www.cyworld.com/bolll (魔王造型师)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완젼 푸짐했다.ㅋ
덕분에 살은 디룩디룩...

태웅오빠와 민아의생일.
꼭 우리 생일같았다 완젼.

이쁘게 리본으로 하나하나 포장된 종합비타민 영양제.
맛나는 죽과 바베큐치킨.
과일과 떡 마실 물과 음료수 에 생일케익까지...*^^*

동영상 찍은것두 있는데.
도서관 앞 복도바닥에 다들 구석구석 앉아서 먹는모습..ㅋㅋ

너무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신호등 소라의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 씬 찍는중...^

이씬을 끝으로 저녁 식사시간 이었던걸로 기억해~

난 개인적으로 이씬 좋더라.
게다가 방송나갔을때 백뮤직이 너무 맘에들었어.


_07.4.06 수원경희대앞 신호등


                               
登录/注册后可看大图


블라인드 속 울 스탭들..

권변사건 촬영중...

북적북적 정신이 없어용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스탭버스안...

여의도로 넘어가는중...  
오늘도 하루의반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고
뉘엇뉘엇 지고있는 태양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어

그게 이쁘고 고마워서
사진한장...*

[ 本帖最后由 lalanono 于 2007-6-5 19:51 编辑 ]
Cherish what you have!!
本人此ID仅限韩剧社区使用,其他网站任何讨论板块出现的相同ID均非本人使用。

146

主题

4543

回帖

1万

积分

★超级版主★

見賢思齊 見不賢而內自省

积分
11550
发表于 2007-5-31 23:08 | 显示全部楼层
All From:http://www.cyworld.com/bolll (魔王造型师)


                               
登录/注册后可看大图


높은 층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리마왕들 열심히 일하구 있지모야.

_강남대학교 승하 해인 복도에 전기나가 러브모드
촬영하던날..    ㅋ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수원셋트촬영중..

달자의봄 녹화날과 겹친지라
달자씨가 찾아왔다.

모두 반갑게 맞이하는중,,^^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칼에 꼿힌 권변호사..

특효팀도 합세.. 옷을찢어서 칼꼿힌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登录/注册后可看大图


권현태 변호사 살인사건.
Cherish what you have!!
本人此ID仅限韩剧社区使用,其他网站任何讨论板块出现的相同ID均非本人使用。

146

主题

4543

回帖

1万

积分

★超级版主★

見賢思齊 見不賢而內自省

积分
11550
发表于 2007-5-31 23:10 | 显示全部楼层
All From:http://www.cyworld.com/bolll (魔王造型师)


                               
登录/注册后可看大图


권변호사님 시체자리N 피분장 연결을 위한
정확한 위치 사진찍어두었던것..
분장중이신 진아선배두 있구..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일명. 권변사건ㅡ.

12년전 과거의 오수와 태훈의 사건이 그대로 재현된..

우리 마왕-의 첫번째 살인사건.

_수원셋트 07.3.04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우리 마왕의 자랑 .
권감독님.


감독님이 좋아라 하셨던사진.
이제올려요,
죄송해용~~~~

                               
登录/注册后可看大图



                               
登录/注册后可看大图


다들~~ 이러고 논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本帖最后由 lalanono 于 2007-6-4 14:34 编辑 ]
Cherish what you have!!
本人此ID仅限韩剧社区使用,其他网站任何讨论板块出现的相同ID均非本人使用。

0

主题

687

回帖

717

积分

黄金长老

积分
717
发表于 2007-6-1 00:09 | 显示全部楼层
听寂寞在唱歌

魔王楼好安静哦


                               
登录/注册后可看大图




                               
登录/注册后可看大图



                               
登录/注册后可看大图




                               
登录/注册后可看大图




                               
登录/注册后可看大图



                               
登录/注册后可看大图



                               
登录/注册后可看大图



                               
登录/注册后可看大图


[ 本帖最后由 混世魔王 于 2007-6-1 00:15 编辑 ]

0

主题

2454

回帖

2948

积分

账号被盗用户

积分
2948
发表于 2007-6-1 00:32 | 显示全部楼层
陪楼上某银唱一句后睡觉去……

HOHO,今天是儿童节~这三个大朋友也特意打扮成这样来凑热闹么 ~


                               
登录/注册后可看大图

FR  DC DEVIL

0

主题

756

回帖

914

积分

黄金长老

积分
914
发表于 2007-6-1 02:52 | 显示全部楼层
重看很是佩服海因
居然和自己暗恋的还那么帅的律师对视那么久都米脸红
要是咱
早就边流口水边喷鼻血的晕倒了

0

主题

2454

回帖

2948

积分

账号被盗用户

积分
2948
发表于 2007-6-1 09:54 | 显示全部楼层
很长的一篇评论~~

一个帖子不够 = =


                               
登录/注册后可看大图


이 잔인한 놀이는 네 책임이다.

그것들은 내 어두운 굴에서 도망친다.
너는 모든 걸 채운다, 너는 모든 걸 채운다.

너를 보기 전 그것들은 네가 차지한 고독에 붐볐고
너보다 더 슬픔에 익숙했다
이제 나는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것들이 하기를 바란다
네가 나를 듣기를 내가 바라는 대로 네가 듣도록

고통의 바람이 늘 그렇듯 여전히 그것들에 불어온다.
때로는 꿈의 허리케인이 그것들을 뒤집어엎는다
너는 내 고통스러운 목소리 속에서 다른 목소리들을 듣는다

오래된 입들의 비탄, 오래된 간청의 피.
나를 사랑해다오, 친구여. 나를 떠나지 말아다오. 나를 따라다오.
나를 따라다오 친구여. 이 고통의 파도 위에서.

- 파블로 네루다, "그리하여 너는 나를 들을 것이다" 중에서




1. “그리하여 너는 나를 들을 것이다”: 복수라는 이름의 절대적 소통  

<마왕> 20화의 최후 십여 분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지켜보면서도 차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진의를 믿지 못해 머릿속이 하얗게, 정말로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이 완벽한 서사의 매듭. 진정한 의미의 종지부. 텍스트 전체를 완전히 다시 새로 써버리는, 이 절대적이고 폭력적인 엔딩이라니. 19화하고도 50분을 치달려 오는 동안 꼬리를 물던 그 무수한 해석들을 모조리 불완전한 오독으로 만들어버리고, 텍스트 전체에 절대의미를 새겨버리는 엔딩이라니. 이 엔딩이 없이는 아무 것도, 그 어떤 해석도 가능하지 않은 텍스트라니. 세상에, 두세 시간짜리 영화도 아니고, 20부작 TV 드라마가, 최후 십분 동안의 엔딩으로 바야흐로 완성되고 존재의미를 찾는 유기성을 꿈꾸었다니. 복수하는 자와 복수를 당하는 자가 역전되고, 죄인과 심판자가 역전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전되고,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가 역전되고,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져 눈에 보이는 진실과 보이지 않는 진실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절대현현의 순간. 처참하고 슬퍼도 철저히, 정말이지 철두철미하게 행복한, 오로지 모순어법으로만 형용할 수 있는 이 기막힌 엔딩에서 20회를 고단하게 달려온 서사의 타나토스와 에로스는 장렬하게 합일했고, 그 합일은 차마 영영 잊을 수 없으리만큼 아름다웠다. 그 비극적 합일 속에서 이 드라마는 우리가 언젠가 포기해버렸던 그 신기루 같은 꿈, 한 인간과 또 다른 인간 사이의 궁극적 소통, 그로 인한 구원을 기어이 실현해 보여주었고. 그 엄청난 여운에 밤새도록 멍하니 잠 못 이루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용광로처럼 아우성치며 들끓던 서사적 욕망들을 전부 온전히 충족시켜 평화로이 잠재워 버린 이 피투성이 엔딩의 의미는 복수극이라는 장르 자체의 철학적 본질을 완전히, 전적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새로운 장르적 사유는, TV 드라마라는 그 어떤 서사형식보다 통속적인 서사형식을 통해 그 어떤 서사보다 깊고 엄정하면서도 중층적인, 인간성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을

오수와 함께 쌍생아처럼 닮은 꼴로 나란히 기대어 죽어가는 그 엔딩은, 정태성/오승하가 꿈꾸었던 복수극의 완벽한 완성이 분명했다. 이 완결을 염두에 두고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 정태성/오승하가 복수극을 추동한 결핍 혹은 욕망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생각해 보면, <마왕>에서 가장 섬뜩하고 끔찍한 대사는, 이상하게도 복수극을 표방한 오락물들에서 우리가 수도 없이 들어왔던 바로 그 대사였다. “이제 다 끝나가, 태성아. 정의가 승리하고 있어. 태훈이도 기뻐할 거야. 우리가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는 거야.” 김영철의 이 말을 듣는 정태성/오승하의 눈에는 왈칵 공포와 연민의 눈물이 차오른다. 영철의 쾌감은 오랜 피학 끝에 형체를 알 수 없이 일그러진 그의 영혼이, 이 명분 뒤에 숨어 흉측하게도 가학에 도취되었음을 보여주기에 섬뜩하고 소름끼친다. 하지만 정작 정태성/오승하는 복수의 대상이 하나씩 죽어나갈 때마다 즐거워하기는 커녕, 점점 더 수렁처럼 깊은 슬픔에 빠져들어간다.

그렇다면 그는 정작 무엇을 원했던 걸까. 정의의 승리를 원한 게 아니라면, 스스로 자신을 더럽히고 타락하면서까지, 종국에는 자기 목숨까지 담보로 잡힐 각오로 복수하는 자가, 그 아픈 영혼으로 원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그 영혼의 바닥 모를 슬픔을 달래줄 수 있을까. <마왕>의 엔딩은 무엇보다, 복수자는 복수극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고통과 불행의 절대적인 소통을 꿈꾼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마왕>은 불행한 자의 절대고독, 그 아픔의 소통 불가능성을 일말의 환상 없이 직시한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기존의 인간관계, 특히 사랑, 우정, 연민, 그리고 순수한 호의와 친절마저도,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자의 슬픔을 위로하고 영혼을 채워줄 수는 없다고, 한없이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가차없이 단언한다. <마왕>은 용서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이해라든지 정의 같은, 그런 말들을 쉽사리 뱉어내는 모든 가벼운 서사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승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이해하고자 하지만, 해인과, 승희와, 광두는 한없이 무기력하다. 선의는 무의미하지 않으나 힘이 없고 허망하다. 정태성의 입장도 이해할 수는 있겠다고 선한 사무장, 혹은 사마리아 사람 차광두가 말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 같습니다”라고. 선하지만 불행을 모르는 사람들의 호의와 친절은 오승하에게 위안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잠자고 있던 죄의식과 생에 대한 집착을 한꺼번에 일깨우며 그를 점점 더 피로하고 고단하게 만들 뿐이다. 절대적인 불행 속에서 그는 무섭게 외롭다. 이제는 용서하라는, 그리고 너를 찾으라는 그들의 호소는 왜 이렇게 울림이 공허한가. 하지만 이렇게 언어가, 상상력이, 연민이, 사랑이, 우정이, 그리고 믿음이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복수는 폭력적으로 소통을 완성해낸다.

이리하여 김지우와 박찬홍은 놀랍게도 복수극에 내재한 진정한 인간적 욕망의 심층심리를 발견해 내고 말았다. 받은 대로 고스란히 불행을 되갚아주겠다는 복수극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과 똑같은 불행에 빠진 쌍생아, 자신의 불행을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의 단 한 사람을 만들어내는데 있는 게 아닐까, 라고. 해인에게 “난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던 태성은 자신의 복수극으로 인해 태어난 자신의 쌍생아, 세상에 자기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퇴행한 어린애처럼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리고 호루라기를 불어 지상의 연인과 삶을 계속하는 대신, 자기가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와 함께 죽어가는 편을 선택한다.

<마왕>에서 복수는 사회와 세계가, 법과 언론과 정의가, 연민이, 그리고 사랑이 실패한 원죄의 자리에서 발원한, 극단적으로 폭력적이고 절대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끔찍한 형태다. 누군가의 죄과로 인해 한순간에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한 존재는, 어느 순간 그가 억울하게 갇혀 버린,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불행 속에서 절대적으로 고독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그 절대고독 속에서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 고독과 불행을 타인/가해자에게 소통하고자 갈구하며 복수극을 벌인다. 하지만 이 소통은, 필연적으로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받은 대로 똑같은 불행을 돌려주고 싶다는 욕망은, 나 역시 그와 꼭 같은 가해자가 되는 대가를 감수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왕>이 바라보는 이 양면성은 이 드라마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복수극으로 만든다. 치졸하면서도 숭고하고, 저열하면서도 아름답고, 죄를 짓고 살아가지만 목숨의 가치가 있는, 불쌍하고 불쌍한 존재로서의 인간성에 대한 길고 긴 깨달음의 여정으로. 그래서 승하는 자기가 꾸민 복수극을 통해 오수로 하여금 자신을 이해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 오수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라는 이 엄정한 명제는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가. 어쩌면 마지막 십분 동안, 모든 것이 시작된 원점, 어두컴컴한 폐차장에서 오승하와 강오수가 대면해 성취하는 오로지 두 사람만의 진실, 그 절대적인 공감대는 어쩌면 대중 픽션에서 쉽사리 자아내는, 손쉬운 환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첩혈쌍웅> 같은 홍콩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멋진 남자들의 쿨한 연대, 그런 식상한 이미지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고단한 이야기의 추이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이 엔딩이 묵직한 현실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건, 두 사람이 복수라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고독한 고통에 가까이 다가가는 지난한 19화 50분의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되고, 법적으로 죄과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계획을 짜낸 루시퍼 오승하가 복수극이 진행되면서 울고 흔들리는 건, 죄지은 자의 가책이라는 걸 상상만으로는 차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승하의 불행이 겪어보지 않은 자는 차마 모르는 것인 것처럼, 오수의 가책 역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고통이었음을 증명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무섭고 엄정한 전제 하에서 복수극은 진행되고, 그러다 제 목숨 따위 초개같이 던질 생각을 하고 있던 승하는 못나고 지질해지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살아보고 싶었던 오수의 집착도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승하는 자기 목숨의 진짜 값어치를 몰랐기에 타인의 삶도 가볍게 저울질했던 게 아닐까. 그는 자기가 눈앞에서 사라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여자와 감자전을 먹고 팥빙수를 먹으며 위로를 받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기쁨도 이해하게 된다. 그 기쁨을 이해하면서 오수의 망각마저도 이해하게 된다. 복수를 당하는 오수 역시 처음에는 머리로, 말로, 다음에는 심장으로, 나중에는 온 존재로, 억울하게 삶을 앗긴 피해자 태성의 불행, 그 끝모르는 심연같은 절망을 차츰차츰 배워간다. 태성이 겪은 불행 속에 오수가 서고, 오수의 불행 속에 태성이 서는 마지막 순간, 두 사람은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은 모습이 되어버리고 서로를 완벽하게, 그야말로 완벽하게 이해한다. 타인을 자기 자신처럼, 자기 자신을 타인처럼 아파하고 연민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순간, 그제서야 용서와 사과는 진의를 찾는다. 태성의 절대고독이 마침내, 피투성이의 절대적 소통을 이뤄내고야 만 것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를 듣고야 만 것이다. 고통의 파도 위에서 피흘리며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채우고야 말았다. 바로 그래서, 정태성/오승하의 복수극은 슬프고 잔인하고 참혹할망정 결코, 결코 허망할 수 없다.  

2. “보이는 진실과 보이지 않는 진실”: 사회와 치열하게 소통하는 <마왕>의 특별한 시선   

폭풍우처럼 몰아친 카타르시스와 심해처럼 깊고 푸르른 고요와 평화. 그 뒤에 남은 것들. 이 두 사람의 완벽한 비극적 죽음에는, 우리 사회, 우리 세계, 우리의 삶, 너무나 많은 것들이 걸려 있다. 이상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로 그들의 어깨에는 그 순간 우리 삶의 가치와 존재의 희망이 걸려 있다. 두 사람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죽음은 결코 두 사람만의 것이 절대 아니다. 이것이 양파껍질보다 더 층이 많은 <마왕>의 복수극이 지니는 또 한 겹의 서브텍스트다. <마왕>이 승하의 복수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와 소통하는 키워드는 오만한 “정의”가 아니라 겸허한 “진실”이고, 승하와 오수의 소통과 죽음은 이것이 얼마나 성취하기 힘든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왕>은 타인의 고통이 지니는 절대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진실을 마주하고 사심없이 대처한다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힘겨운 일인가, 그리고 정의가 있다면 그건 타인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오로지 진실을 마주하는 자신의 자세라는 걸 똑바로 직시한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진실이라는 건, 칼로 무자르듯 “정의”와 “불의”, 혹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모든 이야기에는 양면이 있는 법, 그 양면이 모두 용기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아마 더 공정한 사회에 조금쯤 더 가까워질 거라고.

진실이 한쪽에 치우치는 메카니즘은, 그래서 더 이상 진실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그 기제는, 언제나 권력과, 힘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냉랭한 직시는 승하의 복수를 사적인 한풀이 이상의 차원으로 훌쩍 끌어올린다. 그의 복수극은 자신의 불행을 포함해 이 사회에서 부당하게 침묵당하고 있던 진실(들)의 후면을 전면으로 끌어올리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타자의 이야기를 침묵시키는 법이다. 기득권을 지닌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선포된 정당방위라는 '공식적 진실'은, 오로지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선량한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억울한 고통이라는 '비공식적 진실'을 뒤덮고 억누른다. "진실의 해석은 연루된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고 믿는 오승하의 복수극은 이처럼 부당한 진실의 헤게모니를 전복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다. 태훈의 죽음이라는 이 세계의 타락은, 힘을 남용하던 강오수로부터 시작해서 강동현의 권력으로 진실의 균형이 완전히 깨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이 썩어들어간다. 하지만 아무도 태성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오로지 그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 권력과 재력과 지능을 갖춘 오승하로서 부활해 돌아온 정태성의 복수극이 시작되면서, 참담한 불행 속에 억울하게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가 들끓기 시작한다. 복수극이 진행되면서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던 목소리들이 전면으로 부상해 아우성친다. 언론이, 법체제가, 경찰이, 사회 전체가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부당하고 침묵당한 소수의 힘없는 목소리들을 초혼한다. 조동섭도, 소라엄마도, 그리고 황대필도, 오승하의 복수극에 말려들면서 원했든 원치 않았든 스스로도 사적인 복수를 일구어내고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던 자기 이야기를, 사람들로 하여금 강제로 듣게 만든다. 따라서 오승하가 선택한 인권변호사라는 공적 정체성은 이 복수극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첫 번째 희생자가 권력에 기생해 진실을 왜곡하는데 앞장섰던 권변호사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변호사는 무엇보다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대사도 다시 생각할수록 그에 걸린 무게가 범상치 않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강자의 권력이 만들어내는 진실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또 다시 밀리는 일이 없도록, 그들의 목소리를 공식적인 진실로 새기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이용하는 복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에 서야만 한다. 이처럼 뒤틀린 진실의 헤게모니를 바로잡는 것이 오승하가 벌인 거대한 전쟁의 목표라는 건, 그가 다른 누구보다도 성준표의 살해에 가장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데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객관적 진실을 전달한다는 미명 아래 언제나 사적인 영달과 권력욕만을 채우는 부패한 기자는, 약자의 침묵을 당연시한다는 점에서 세상의 모든 가해자들 중에서도 최악의 가해자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희생자를 내도 좋으니 정태성의 복수극을 독점취재하게 해달라는 성준표의 제안은, 성준표의 윤리적 마비상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오승하는 극 전체를 통틀어 가장 섬찟한 악마성을 내보이며 가차없이 그를 심판한다. 하지만 오승하가 20회까지 이어지는 끝없이 고단한 터널로 들어가는 건 바로 이 순간이다. 사회적 공적인 명분으로는 도저히 덮을 수 없으리만큼, 복수의 행위를 통해 죄없는 피해자였던 복수자의 슬픈 영혼이 결국 더럽혀지는 순간. 그가 손가락에 피를 묻히는 순간, 심판이라는 이름 하에 스스로 살인자의 멍에를 덮어쓰는 순간,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암적인 존재를 제거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암적인 존재 역시 사람이고 그 암적인 존재를 제거한 사람 역시 사람이라는, 심판 역시 죄라는 인식이 깨어나는 순간. 무엇보다 자기 자신 역시 목적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진실의 한 면을 강제로 침묵시켰다는 인식. 공정하다 못해 잔인한 <마왕>의 서사는, 사회의 기득권자로 전능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 오승하를 그가 타인을 단죄하는 바로 그 이유로 심판하기 시작한다.

오승하의 대극이자, 이 모든 사태의 진원지에 선 강오수의 캐릭터는 어찌 보면 <마왕>의 진정한 성취라 할 것이다. 그의 캐릭터는 전통적인 복수극의 틀을 모두 불가능하게 만든다. 누가 봐도 강오수는 그렇게 처참하게 파멸해 마땅한 악인이 아니기 때문에, 오승하의 복수극에서 우리는 어떤 쾌감도 느낄 수 없다. 더구나 오승하는 물론, 세상 누구도 모르는 그의 진실은, 그가 친구를 살해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그 상처로 인해 지난 12년을 지옥같은 죄의식에 시달리며 용서받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승하의 복수극은 오해로 인한 무의미한 헛소동인가? 아니, 이 경우에도 진실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한 <마왕>의 엄정한 기준에는 일말의 타협이 없다. 오수의 죄는 태훈이 덮어쓴 오명을 딛고 삶을 성취했다는 것, 즉, 진실을 묻은 회칠한 무덤 위에서 자기 삶을 쌓아올려왔다는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형사라는 공적인 정체성 뒤에서 세상에는 “나쁜 놈과 나쁜 놈 잡는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 그는 결국은 태훈의 죽음과 자신의 죄를 잊었다. 자기 삶이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태성의 처절한 고통에, 불행에, 그 부당함을 바라보지 않았고 또 끝내 눈감아버렸다. 괴로움을 잊고 고통이 사라진 순간, 그는 복수를 당해 마땅한 사람이 되었다.

<마왕>에 등장하는 강오수의 죄는, <부활>에서 권력을 탐해서, 재력을 탐해서, 그리고 사랑을 탐해서 적극적으로 타인을 해한 그 때 그들의 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불편하다. <부활>에서 우리는 사랑스러운 초인이자 찬탈당한 정당한 왕자 강혁/하은의 복수에 완전한 동일시를 이루고 열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왕>에서 오수의 죄는, 비인간적인 악의를 품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질러버렸고, 그 다음에는 비겁해서 타인의 고통에 눈감아버린 우리 모두의 것이다. 내가 편하게 살고 싶어서, 지질한 행복을 일구고 싶어서, 내가 행복하려면 어차피 다른 누군가는 불행해야만 한다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저지른 죄악이기 때문이다. 고의적 상해가 아니었다고, 실수와 방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해서, 태성이 겪은 불행의 깊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는 건 얼마나, 정말이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실수였는데, 좀 봐 달라고, 억울해하고 징징거리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초반에 <마왕>을 보는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분명 멋진 주인공이어야 할 강오수가 자기 죄에 대해서 참으로 너그럽고 둔감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한 복수극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강오수는 태성의 불행을 돌아보고 용서를 빌기보다는, 자기 삶을 지키는 데 급급한 모습으로 비쳤다. “그래도 살아보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열심히 살면 태훈이도 언젠가는 나를 용서해 줄 거라 믿었다”고도 말한다. 자기연민에 빠져 사랑하고 싶은 여자한테서 위안을 얻어보려 애쓰기도 하고, 실수였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하고, 선생님 탓이라고 다른 사람들 탓으로 돌려보기도 한다. 태성이 앞에서도, 그래도 지금은 내가 형사고 너는 죄인이라고, 그렇게 흔들리는 자아를, 자존감을 추스린다. 보기에 몹시 불편하지만 이런 강오수의 모습이 죄를 짓고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실이다. 죽어도 살아보려고, 삶에 집착하는 강오수는 필연적으로 지질하고 못나 보인다. <꽃보다 아름다워>의 장인철이 강오수와 비슷한 입장에서 더 비극적이고 사랑스러워보였던 것은, 그가 애초에 자기 인생을, 삶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쳤기 때문이다. 우린 픽션 속에나 존재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을 더 쉽게 사랑한다. 하지만 죽은 자를 위해 산 자가 제 삶을 포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오수의 비루한 삶에 대한 못난 집착, 자기 연민과 기만은, 잊고 살고 싶은 우리네 흉한 뱃속에 거울을 들이대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진실되다. 그리고 이러한 오수의 모습은,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용단을 요구한다. 이게 네 모습이라는 걸, 진실을 인정하라고.  

진실의 양면을 바라보는 이 잔인한 복수극의 양단에 선 두 사람이 사회정의를 대변하는 변호사와 형사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치열하게 공적이고 사회적인가를 보여준다. 나쁜 놈을 잡고 싶다고 배후조종자에 대한 투지를 불태우던 형사는, 종국엔 나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자기가 쫓고 있는 사람이 적인지 자신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들에게는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남의 목숨을 앗은 사람들을 변호하게 된 변호사는, 자기가 어느 새 자기 입으로 원수의 죄를 변호하고 있다는 자가당착을 깨달아 버린다. 죄인을 단죄하는 형사와 죄인을 변호하는 변호사는, 서슬퍼런 양날의 진실을 찾아내는, 구도같은, 혹은 천형(天刑)같은 여정에 결국 나란히 서고야 만다.

갈가리 찢기는 심장의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나희의 불륜을 밝히고, 희수의 죄를 덮지 않고 단죄하는 오수는 드디어 자아와 사심을 버리고 진실을 대면하는 형사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한다. 소라엄마와 나석진을 변호하면서, 오승하는 자기 입으로 오수의 죄와 자기 자신의 죄를 한꺼번에 변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걷잡을 수 없이 슬퍼져 버린다. 강동현과 마지막으로 독대하면서, 그는 진실을 방기하고 권력으로 왜곡한 강동현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지만,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은 이해해 버린다. <마왕>은 정의를 볼 때도, 죄를 말할 때도, 용서를 말할 때도 일말의 타협을 불허한다. 정의라는 쉬운 이름으로 복수의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소라엄마나 조동섭, 황대필의 죄과 역시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무화하지 않는다. 승하가 법체제에 의한 징벌을 막았을지언정, 사람의 목숨을 앗은 죄과는 지울 수 없는 것이고, 그들이 평생 떠안고 살아야 할 그 고통까지 슬픔이 되어 고스란히 승하의 어깨를 짓누른다. 승하의 머릿속에서 기획의 논리는 완벽했지만, 굳이 용서받을 희망도 없이 자기 죽음까지를 계산에 넣었지만, 다만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 심장의 고통, 그 깊이. 하지만 사실 억누를 수 없는 이 슬픔이야말로 오승하를 견종철이나 강동현 같은 인간들과 가르는 심장의 진실이요, 영혼의 증표다. 자기는 살인자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선택했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해보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오수는 자기가 연쇄살인자를, 배후조종자를 잡아넣겠다고, 그게 정의의 구현이라고 믿고 그에 삶의 의미를 걸고 집착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의 원죄를 인정하고 만다. 그리하여 승하는 마지막 순간, “나는 네 형을 살인자로 만들었고 네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고 온전한 책임을 시인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잡고야 말겠다고 전의를 불태우던 오수는 태성에게 “너를 그렇게 만든 건 나다. 고의든 실수든 중요하지 않다”라고 또한 온전한 책임을 시인한다. 두 사람은 이 순간 바로 이 힘겹고 힘겨운 성찰로 하나가 되고 우리 사회의 희망을 짊어진 영웅들이 된다. 변호사로서, 형사로서, 죄를 지은 타자를, 벌받아 마땅한 누군가를 단죄하는데 성공해서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 단죄하기 어려운 자기 내부의 적과 싸워 이기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건 너무나 힘겨운 싸움이다. 승하와 오수가 진실을 향한 이 길 속에서 차츰차츰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은 느리고 지난하고 늪처럼 끝모를 피로로 점철되어 있다. 두 사람은 피하고 또 피하고 또 피하고 싶던 진실에 아주 천천히 다가간다. 그리고 폐차장에서 벌어진 최후의 오발사고 속에서, 날선 진실에 심장을 관통당한 그들은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고통스럽고 적적한 무간지옥에 단 둘이 서 있는 서로를 짧디 짧은 순간 고개 돌리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다. 이미 오래 전 상대를 용서해버린,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죄과를 용서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어간 이 죽음보다 더한 성찰의 고통은, 진실 앞에서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고 숭고했던 두 영혼의 비극적 증표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희망이다.

0

主题

2454

回帖

2948

积分

账号被盗用户

积分
2948
发表于 2007-6-1 09:56 | 显示全部楼层
3. 그 많은 시체들은 어디로 갔을까: 윤리적 알레고리로서의 <마왕>
그러면 그 많은 시체들은 대체 무슨 의미냐고, 누군가가 묻는다. 대식이는 왜 죽었으며, 소라 엄마는 무슨 죄로 살인자가 되었느냐고, 다들 정말 죽을 만한 죄를 져서 죽은 거냐고. 그리고 해인이는 이 이야기의 어디쯤에 끼어들어가느냐고. 생각해 보면 <마왕>은 정말 이상한 드라마다. <마왕>의 모든 인물과 소품과 대사는, 언제나 보이는 것 이상의 추상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마왕>은, 철저히 리얼리스틱했던 <부활>과 갈라진다. 아무리 봐도 <마왕>은 형이상학적 알레고리이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복수극이라는 표층은 인간의 절대적 구원이라는 종교적 심층서사의 알레고리고, 그걸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방식은 기묘하게 판타지적이기 때문이다.

판타지의 중심에는 오승하가 있다. <마왕>이 인용하는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 그리고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만 봐도 짙은 기독교적 색채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 텍스트들을 복수극의 키워드로 사용하는 정태성/오승하라는 이중의 인격은 더 육중한 상징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죄없는 소년 정태성이 사회와 인간들의 죄를 한몸에 짊어지고 죽음보다 더한 불행에 빠져 사흘 밤낮 사경을 헤매다 깨어나서 초인 오승하로 다시 태어난다. 인간을 유혹하고 유혹에 빠진 인간을 심판하는 오승하의 복수극은, 인간은 죄를 짓는다는 전제 하에 단 한 사람이라도 예상과 달리 행동했을 경우 목표인 강오수에 도달하지 못할, 판돈 큰 도박판이다. 이 추리물이 리얼리즘 드라마라면 분명 결정적인 플롯의 결함이 될 이러한 장치들은, 판타지요, 도덕적 알레고리라는 틀 속에서는 철저하게 유효하다. 운명을 상징하는 타로 카드와 알레고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고전의 인용문들도 이러한 야심찬 틀에 부합한다. 오승하는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을 예상하고 또 기대하면서 정교한 덫을 놓고 완벽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작가이고 예술가이고 서사의 창조주다. 오승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이야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 그대로 지옥문이 열린다. 그래서 그는 단테를 이끌고 지옥문을 열어젖히는,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다. <폭풍우>를 휘몰고 와서 모든 서사를 지휘하는 프로스페로다. 오승하가 움직이면서 <마왕>의 세계에는 살짝 마술적인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일상적인 윤리적 선택은 말 그대로 “죽음”의 대가를 치르는 위험한 도박이 된다. 오승하가 나타나면서 서울의 도시는 어느 순간 사악한 마법사가 나타나 우리를 죽음의 샘물로 인도할지 모르는 마법에 걸린 숲이 되고, 눈에 보이는 대로가 진실이 아니고 언제나 숨겨진 진의가 있는 마술 같은 사물들로 가득 차고, 그리고 신탁을 내려주는 아름다운 신녀가 있는 이야기 속의 세상. 빛의 구원과 어둠의 유혹이 공존하는 곳, 한 순간, 한 순간, 닥쳐오는 시험에 “버텨서거나 아니면 타락하거나” 양자택일의 윤리적 선택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하지만 매혹적인 판타지 속의 세상이 펼쳐진다. 오승하는 그런 의미에서 서사를 조종하는 진정한 마왕이다.

그가 짜놓은 이 서사의 장기판 속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왕>과 유사한 비주얼 알레고리였던 <세븐>의 희생자들처럼 한 개인이자 또한 보편적 인간으로서 7대 죄악처럼 추상적 죄목을 달고 있다. “돈이 내 자식이다”라고 말하며 모정을 우습게 여기고 폭력을 행사하던 대식의 금전숭상, 권력에 기생하는 권력으로 진실의 헤게모니를 뒤집는 일에 앞장섰던 권변호사, 그리고 객관적 진실을 운운하면서 위선적으로 언론의 권력을 휘두르는 성준표, 이들의 죽음은 오승하의 사적 복수가 계량적으로 정당한가라는 잣대를 넘어, 추상적인 알레고리로서, 우리 사회와 인간성의 실패를 상징하기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 순기와 석진과 희수 역시 탐욕과 쾌락과 오만을 상징한다. 나희와 석진은 단테가 지옥에서 만난 가장 인간적인 죄인들, 그 유명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를 닮았다. 죄를 지었으나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구원의 희망을 놓지 않는. <마왕>의 이야기는 승하가 정의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죽음들을 통해서 그가 보내오는 메시지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오승하가 보내오는 타로 카드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힘을 갖는다. 타로는 예언하지만 어떤 행위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들은 정확히 예언대로 행동하며 파멸로 걸어들어간다.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을 바탕으로 오승하가 쓴 시나리오대로 로봇처럼 움직여주는 그들은, 오승하의 기획을 완성해주지만 또한 인간에 대한 환멸을 각인시켜준다. 승하의 눈물은 여기서 온다. 그래서 오승하는 예이츠의 표현대로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배태하는 픽션의 창조주다. 유혹의 선악과를 깔아놓고, 타락을 예지하며, 그러면서도 결국 타락하는 인류를 바라보며 한없이 슬퍼하는 밀턴의 하나님이고, 도덕적으로 인간을 단련하기 위해 끝없는 시험을 하는 반면교사 루시퍼다. 그는 또한 파멸을 전제로 악마와 영혼의 계약을 맺은 슬픈 파우스트다. 소년과 남자의 얼굴, 천사와 악마의 얼굴, 무엇보다 정체를 따지지 않더라도 어쨌든 살짝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주지훈의 가녀린 실루엣과 우아한 아름다움은 오승하라는 탈육신적인 인물을 더할 나위 없이 설득력있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또, 우리 세계의 실패로 자기도 모르게 캄캄한 터널 속에 갇혀 버린, 그냥 겁에 질려 울고 있는 불쌍한 어린 아이이기도 하다. 우리 세계의 도덕적 실패가 한번 죽였던 아이, 우리가 버리고 손을 놓아 혼자 굶주렸던 죄없는 아이, 그래서 기어이 붙잡고 보듬어 주어야 할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다. 승하는, 자기가 놓은 덫에 빠져 죄짓고 죽어가는 자들을 바라보며 연민과 자책으로, 바닥없는 수렁같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져들어간다. 그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그는 끝없이 연민하고 눈물을 흘린다. 끝내는 연루된 모든 사람들의 죄까지를 모조리 한 몸에 떠안고 산화하겠다는 오승하의 기획은, 인류의 죄를 한몸에 떠안고 죽은 그리스도의 이미지까지를 포괄한다. 그의 유혹은, 그의 슬픔은, 그의 눈물은, 이렇게 상징적인 의미에서 우리 모두를 향한다. 그가 잃어버린 평화는, 그의 용서는, 그가 이미 오래 전 포기해버린 삶과 행복은, 우리 구원의 문제와 이어진다. 오승하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데에, 오승하가 쓴 이야기를 전복하는 데에, 인간성의 희망이 걸린다.

그리고 그 구원은 참으로 적절하게도 진정한 ‘만인’이자 진정한 사람의 아들 강오수에게서 온다. 오수는 기독교적 알레고리의 예정론을 벗어나 <마왕>이 인간의 비극으로 승화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신은 운명을 예정하지만 인간은 운명을 바꾼다”는 캐치프레이즈는, 강오수가 예비한 최후의 반전에서 진의를 꽃피운다.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둔감한, 하지만 본능적으로 선한 보통사람인 오수는, 이 판타지의 세계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성배기사다. 알레고리가 독자의 교육을 목표로 하는 장르라고 할 때, 여기에는 사실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독자가 이야기의 함의를 끈질기게 해석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오수는 완벽한 알레고리의 독자요, 비극적 교육의 완벽한 학생이다. 못나고 이기적이었던 오수는 포기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승하를 쫓는다. 승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승하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성심으로 반응한다. 타로카드를 해독하고, 비합리적인 진실을 매개하는 신탁녀인 해인의 도움을 받아 고전을 찾고 증거를 읽고, 그를 부르는 곳으로 지옥 끝까지 따라간다. 비틀거리고 휘청대면서도 승하가 깔아놓은 모든 시험에 통과한 오수는, 마지막 순간 오승하의 시나리오대로 끝을 맺기를 거부한다. 그는 조동섭이나 소라엄마처럼 분노하고 증오하는 대신 운명과 화해하고, 신을 용서하고, 고통을 받아들인다. 승하 속에 갇혀 있던 태성을 붙들어 끌어낸다. 이는 강오수의 자기애, 삶에 대한 그 끈질긴 집착에서 온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생에 대한 집착은 오수의 약점이지만, 또한 속속들이 사람다운 그만의 힘인 것이다. 자기 목숨이, 자기 삶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그 순간 강오수는 자신의 쌍생아가 되어버린 태성의 삶에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죽기보다 힘들어두, 있는 힘껏, 살아라, 태성아.”

그 “태성아”라는 한 마디에 연기자 엄태웅이 그 순간 담아낸, 그 사적이고 은밀하고 다정한 느낌을, 뭐라 형언할 수 있을까. 아무리 얼음같은 심장이라도 순식간에 녹여버릴 것만 같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엄태웅 특유의 그 매력이 그 순간 폭발한다. 누구라도 그 어깨에 매달려 엉엉 울고 싶을 것만 같은, 한없는 위로를 주는 그 따스한 느낌. 19화를 달려 올 때까지, 단 한 번도 강오수가 오승하 앞에서 자기 방어기제를 내려놓은 적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 순간 이 느낌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오승하가 쓴 결말대로, 신이 쓴 운명대로 아무런 희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고 공멸하는 참담한 묵시록으로 달려가는 대신, 강오수는 승하에게서 펜을 빼앗아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가 되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파국 앞에 버텨선다.

그러자 복수의 화신, 천사와 악마의 대리인, 유혹의 루시퍼, 그리고 전능한 신의 모습을 하고 있던 승하는 무너지고 엄마를 잃고 무서운 꿈을 꾸고 있는 어린 아이 태성이가 나타난다. 알고 보면 그는 무서운 환상을 만들어내어 절대적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사실은 자기가 만들어낸 환상 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평범한 사람 오즈의 마법사였던 거다. 이 순간, 완벽한 엄태웅의 큐에 반응하는 주지훈의 본능은 무서울 정도다. 태성과 오수, 두 사람의 몸이 뒤엉켜 말 그대로 하나가 되는 마지막 순간, 태성이 스스로 죽고자 하고 오수가 살리고자 하는 그 마음 또한 하나가 된다. 차마 너무 미안해서, 상대를 이렇게 만든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지옥의 고통은,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순결한지를 역으로 보여준다. 그 순간 오발사고는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리고, 태성은 그 순간 오수를 이해하는 처참하게 고통스러운 마지막 한 걸음까지를 어쩔 수 없이 내딛는다. 그리고 오수를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한번도 소리내어 울지 못했던 오열을 쏟아낸다.

알레고리가 독자를 서사의 유혹 속에 빠뜨려 어떤 윤리적 깨달음을 얻게 만들고자 한다면, 그 순간 독자로 하여금 철저히 주인공과 동일시하게 만들고 서사의 추상성을 잊게 만들어야만 한다. <마왕>의 마지막 십여분간, 온전히 오수와 승하가 되어버린 엄태웅과 주지훈의 연기와, 엄청난 흡인력으로 비극적 카타르시스의 정수를 보여준 극본과, 그리고 적적하다 못해 괴괴한 폐차장의 푸른 심연을 잡아낸 연출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픽션과 현실의 경계는 한없이 흐릿해진다. <마왕>이 19화 동안 극도로 절제해 왔던 서사적 동일시, 감정이입의 기제는 폭발한다. 그리고 이 시청자와 주인공의 동일시를 통해, 정말로, 인간이 신을 구원하고 마왕을 사람으로 녹여 구원하는 윤리적 알레고리의 완벽한 결말이, 세상에, 한국의 TV 드라마라는 형태 속에서 구현된 것이다.

5. 진화하는 장르를 응원한다. 그들의 야심을 응원한다.


<마왕>이 완벽한 작품이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알레고리의 추상성을 벗어나지 못한 해인이 모녀의 종잇장보다 얄팍한 캐릭터 묘사,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 자체가 원망스러워질 정도로 교조적이고 뻣뻣했던 해인의 대사, 박하사탕이라든가 불끈 쥔 주먹이라든가 철창 같은 블라인드라든가 창 밖을 내려다보는 자기 성찰의 장면이라든가, 지나치게 명백하고 또 너무 반복적이어서 지루했던 비주얼한 상징들이라든가....초반부엔 신인 배우들의 연기도 아슬아슬했고, 또 플롯의 리듬이나 캐치프레이즈 같은 대사들도 자칫 좌초할 듯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왕>은 설핏 보이던 가능성만 믿고 계속 따라온 시청자들에게 역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강력한 서사적 몰입과 감정적 충성, 그리고 벅찬 카타르시스를 보답하겠노라 약속하고 있었다. 이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졌건 아니건, KBS 드라마 <마왕>이 걸어온 외줄타기 같은 행보는 오랜만에 가슴이 펄떡펄떡 뛸 정도로 흥미진진한 ‘사건’이었다. 모든 결점을 온전히 용서하고도 남는 <마왕>의 힘은, 오로지 복잡하고 유동적인, 그래서 서사로만 포착할 수 있는 진실의 엄정함에 봉사하려는 성실하다 못해 미련한 뚝심에서 온다.

그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그 돈키호테 같은 그 뚝심에, 그 진심에, 그 용기에 나는 감동하고 감동하고 또 감동한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었겠는가. 똑같은 이야기를 섹시하고 센세이셔널하게 포장할 방법은, 내 좁아터진 상상력으로도 무한히 많이 떠오르는데 말이다. <마왕>은 TV 드라마가 한 회, 한 회, 시청자의 쾌락에 일회용으로 봉사하고 소비되는 장르라는 편견과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 시청자가 기껏해야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지성을 지닌 저능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믿지도 않는다. <마왕>은 시청자가, 어려운 화두를 던지면 생각하고 느끼고 해석하며 끈질기게 따라와줄 거라고, 그만큼 지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믿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방송환경에서 드라마라는 장르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엄격한 기준을 스스로 설정해놓고, 그 기준에 따라 서사의 완결성에 헌신한다.

아무리 봐도 <마왕>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TV 시청환경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드라마다. <마왕>은 우리 시대 연속드라마라는 장르가 기술의 진보에 따라 새로운 차원의 경지로 도약하는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를 시청하고 소비하는 환경은 인터넷의 진보에 따라 급변했다. 방송사의 다시 보기 서비스, 타임머신 TV, DVD, 하나 TV, 유투브, 디빅스... TV 컨텐츠는 이미 일부 시청자들에게 시간의 제약을 넘어선지 오래다. 그리고 <마왕>은 DVD, 하나 TV, 그리고 다운로드 시대를 맞아, 그 어떤 서사 장르보다 휘발성이었던 TV 연속 드라마라는 장르가 영화처럼 시간의 제약을 초월해 유기적인 서사예술로 진화하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서적 감정이입을 최대한 막는다든지, 엔딩으로 인해 서사 전체에 의미를 덧칠한다든지, 이처럼 <마왕>이 취한 몇 가지 중요한 선택들은 TV 연속 드라마라는 서사형식, 그 자체의 가능성을 여타의 경쟁작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에서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 가능성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작품 속에 완벽하게 발현되었는가 아닌가, 라는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이 시도 자체가 갖는 의미라는 게 영 범상치가 않다. 그리고 <마왕>의 한자리수 시청률은 아무래도 이 엄청나게 거대한 야심/뚝심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된다.

<부활> 감독판 DVD까지를 만들어냈던 박찬홍/김지우 팀은, <마왕>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단 한 번 방영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휘발되어버릴 작품이라고 전제하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이들은 <마왕>을 보는 시청자들이 놓친 에피소드를 복습하고 이미 본 에피소드를 다시 공부하고 사유하고 해석하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소위 <부활> 패닉이라 일컬어졌던, 사상 유례 없이 분석적이고 강력한 매니아들을 거닐었던 박찬홍/김지우 팀은, 한 번 여흥거리로 드라마를 보고 소비하는 일반 시청자들만을 위해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다. <부활> 패닉들이 아니더라도, 그만큼의 열정과 애정으로 컨텐츠를 복습하며 파고 들어가줄 시청자들이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그들을 위해서 디테일을 구축하고 추리소설의 단서처럼 대사를 내뱉으며 복선을 치밀하게 깔아놓고 있다. 비전형적인 조명과 앵글로 화면을 구성하며 한 컷 한 컷을 건축처럼 구축하는 박찬홍의 영화적인 연출과, 한 회의 극적인 힘보다는 전체 서사의 완결성을 훨씬 더 중시하는 김지우의 극본은 둘 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잡념이 없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인터넷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무차별하게 대중의 요구가 제작진에게로 쏟아져들어오는 미디어환경에서 <마왕> 같은 이야기가 초심을 유지하며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는 건 작은 기적이다. 박찬홍과 김지우는 TV 드라마라는 장르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며 소설이나 영화만큼, 아니 서사시만큼이나 풍부한 예술적 가능성을 지닌 서사적 양식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믿음 속에서 힘겨운 소통을 시도하며 우리에게 손을 뻗친다.

그래서 나는 그 힘겨운 믿음을 버리지 않아 준 그들에게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 심지어 이 시대는 서사시는 고사하고 소설이나 영화마저 의미라든가 진실 따위를 담는 그릇은 아니라고, 그렇게들 말하는 시대가 아닌가. 작가는 오래전에 죽었고, 옳고 그른 건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며, 어느 순간 텍스트에서 의미란 저어어어어기 무지개 너머로 달아나 버린 지 오래라고들 하지 않는가. 하지만 <마왕>이 끝난 후, 도로시를 태운 토네이도처럼, 프로스페로의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카타르시스가 지나가자, 나는 왠지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숭고한 신들의 세계를 일별한 것 같은 기분, 왠지 내 영혼이 전보다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깨끗해진 듯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던 비극적 정화작용이 대체 뭔지 생전 처음 좀 알 것 같아졌다. 픽션의 힘이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좀 더 숭고한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던, 르네상스 이론의 이상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그 이야기로 인해 조금 더 슬퍼지고 조금 더 현명해진 느낌이 들었다. 픽션이라면 닥치는 대로 소비하고 보는, 구제불능성 픽션중독자인 내가 붙들 희망이 생긴 느낌이었다고, 시청자를 믿어준 그들의 정성만큼 나도 해석의 의무를 다 하고 싶었다고, 이 횡설수설 길기만 한 글을 통해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덧: 아, 그리고 KBS여. 박찬홍과 김지우를 지켜라. 그들은 한국의 공영방송으로서 KBS드라마를 BBC가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줄 희망이니까. <마왕>은 내가 그대들에게 시청료를 내는 이유다. (아 그리고 <마왕>의 감독판 dvd를 뱉어내라 ㅋㅋ)
**************************************************************************
부갤에서 퍼온글 출처는 모름...

0

主题

2454

回帖

2948

积分

账号被盗用户

积分
2948
发表于 2007-6-1 10:00 | 显示全部楼层
翻译机版……大概的内容也能看懂……
===============================================================

KBS 电视剧 <魔王>: 那个血的颜色bokkusugukku的真实的心

这个残忍的游玩是你的责任.
那些用我的暗的柿子逃跑.
你满足全部的事的, 你满足全部的事.
象我你希望那样听象看你之前那些
你占据了的孤独拥挤
那些做自你更习惯了悲伤的已经我想我对
你说的事一样地请求的你听我一样地
痛苦期望的事经常不那样相变化在那些吹.
时候梦的台风推翻那些的你在
我的困苦的声音中听其他的声音们
旧的口们的悲叹,旧的请求的血.
爱我,朋友哟. 不离开我. 根据我.
我附有的朋友哟. 在这个痛苦的波浪上.
- 小酒店俄内尔达,"并且你听"我中

1."并且你听"我:报复这个名字的绝对的沟通

不能不能呼吸正面也休息<魔王>20火的最后十多余相信一边注视无论如何也在眼前一边也打开的话的真正的意义头中很白,真的在雪白里(上)开了. 现在也无法相信. 这个完美的叙事的扣儿. 真正的意义的终止符. 即使完全再重新使用竭尽文本全体的, 这个绝对暴力性的结尾也. 即使全部不完全的误读制作了再过19火之后也跑 50分与提高们不论u来的期间咀嚼了尾巴的那个无限的解释们, 文本全体绝对刻了意义的结尾也. 没有这个结尾什么都, 怎样的解释也不可能是的文本之类. 完全再,二个三个时间的电影也没有,20部分作品 TV 电视剧,最后充分里面的结尾正是现在做梦之类被完成找寻存在意义的遗弃性. 与变成与与杀仇敌的人报复见的人逆战做,罪人和图章人逆战做,加害者和受害者逆战做,容许的人宽恕接受的人逆战做, 全部的东西以一个一个集团眼睛看得见的真实看不见的真的分类的这么那么是吧意义丢失的绝对燎现实的瞬间. 能象凄惨即使悲哀彻底,真的也贯穿一样地幸福的, 只顾只是矛盾语法形容以的这个可怕的结尾 20次累发倦地跑了来的叙事的tanatosu和厄洛斯壮烈合一了, 那个合一无论如何也永久忘记的数obuuri位美丽. 在那个悲剧的合一中这个电视剧与我们不知不觉放弃了的那个蜃气楼那样的梦,一人又终于实现由于其他的人之间的穷极点的沟通, 那(样)的救援给我看. 那个很多的余音一日晚上中不能发呆地睡着想再想我突然悟出. 象熔炉一样地是ausonguchi全部完全满足沸腾了的叙事的欲望们对和平让睡觉了的这个净是血结尾的意义完全,全面地新定义着bokkusugukku这个种类自己的哲学的本质这样的事. 并且那个新的种类的理由所说的, TV 电视剧的通过比怎样的叙事形式通俗的叙事形式比怎样的叙事深虽然是严正开始导致但是多层性,对人性的理由这样的事

以与污水一起象双生孩子一样地象的形式排列基于死的那个结尾,状态性/吴升哑巴做梦的bokkusugukku的完美的完成明显. 如果关注这个完成从开始再读话,状态性/吴升哑巴秋天冬天做了bokkusugukku的缺乏有的在欲望的真正的本质几七日再试着考虑变得. 如果试着考虑,<魔王>最阴森森凄惨的台词,是以不可思议的事标榜了bokkusugukku的娱乐物们我们也没有数进入了的确实那个台词. "已经全部结束, tesongu哟. 正义胜利着. tefun'i也打算感到喜悦. 我们预先是转向跟全部的东西的也地方.大口地恐怖和怜悯的眼泪上升到听"金·yonchoru的这个言词的状态性/吴升哑巴的眼. 英哲的快感不能多年的被虐结果形式体明白歪斜了的他的魂隐藏在, 这个名分后可憎也向加虐现出醉了的事阴森森汗毛悚然立起. 可是在对报复的对象各一个在死的时候每次不用说享受落入, 越发更象泥沼一样地深的悲伤有za状态性/吴升哑巴.

如果那样他喂想要什么? 以由于如果没有想要的正义的胜利,亲自污染自己堕落,终局到(连)自己的生命用抵押被捉住的精神准备讨伐仇敌的自家, 那个痛的魂请求到底是什么呢. 什么能平息那个魂底不明白的悲伤? 据说如果结尾不是<魔王>的比什么都(好),报复者bokkusugukku做梦无论如何也不可能,痛苦和不幸绝对的沟通. 可以说 <魔王>没有一缕的幻想就注视不幸的自己的考虑绝对孤独, 那个疼痛的沟通不可能性. 谁都不明白那个. 既存的人际关系,特别的爱,友情,怜悯, so做纯粹的不能连好意和热情,抚慰全部被夺取了纯粹的人的悲伤满足魂的话,无限地与帽子不足, 严厉断言. <魔王>害羞容易地吐出宽恕啦爱啦理解啦正义那样的, 那样的言词的全部轻的叙事们. 渔夫和,绳戏和, gwando无限地没精神比心爱升哑巴再打算理解,. 善意不无意义没有力量由于假空虚. 他断然说能状态性的立场也理解的话善良的事务长, 有的在samaria人chiagwando说,. "试着经验不的人好象绝对不明白"那个. 善良不明白不幸的人们的好意和热情只是给(对)吴升哑巴给安慰的事在哪里过滤, 倒不如睡的罪的所想和对纯粹的贪恋pen使之认识他越发更累疲劳发倦. 在绝对的不幸中他可怕地寂寞. 今后所说的请容许的请, so做访问你的他们的诉讼怎么这么响声空虚? 可是这么语言,想象力,怜悯,爱,友情, so做信赖失败了的确实立在那个座位,报复暴力性地开始完成沟通.

于是金·智友和薄刈鸿恩可惊的事找到了bokkusugukku内在了的真正的人的欲望的深层心理. 接受了的那样就那样doegabuazugeddabokkusugukku的穷极点性的目标,做出能理解自己完全同样的na不幸脱掉了的双生孩子,自己的不幸的世间的免费一人不是有吗, 不幸. 所说的渔夫 “我谁都不必要"的tesongu在根据自己的bokkusugukku出(产)生了的自己的双生孩子,对世间能完美理解自己的免费一人的死面前,象倒走了的孩子一样地哭喊拼命能佩带. 并且选择与法语地上的恋人继续,但是另一方面纯粹,自己做出了警笛的再与其他的自我一起死.

<魔王>报复在社会和世界,法和言论和正义,怜悯, so做爱失败了的原罪的座位是发源下面,极端性地暴力性绝对的交流凄惨的形态. 根据谁的罪过要一瞬全部被夺走了纯粹的一存在, 哪个瞬间他令人懊悔地被关了,其他的人们想象的为了成为了在事,也不能理解的不幸中绝对地孤独的存在在, 那个绝对孤独中不放置纯粹的带子拼命对别人/加害者打算沟通那个孤独和不幸渴求做做bokkusugukku. 可是这个沟通,不可缺少脱掉以外自相矛盾是没有的类型交流的不如. 因为自己想领受了的那样还完全同样的na不幸这样的欲望,是甘心忍受我也成为他和完全同样的na加害者的代价这样的意义.

并且 <魔王>眺望的这个两面性在世间最特别的bokkusugukku制作这个电视剧. 虽然是幼稚而拙劣但是崇高,低劣一边做一边也美丽,犯罪活作为有生命的价值,以可哀思想可怜的存在的人性对于的长长的悟性的旅程. 因此通过挂上(放上)的自己摆出姿态了的bokkusugukku使对污水来说不仅仅理解自己,不可避免完美理解以外污水丢失. 所说的哎呀,试着经验不的人不知道的, 的这个严正的命题可怕寂寞多少? 在如果如果做了, 全部最后的十分种的东西开始了的原点,漆黑的废车场吴升哑巴和姜污水说不定看起来好象只有会面成就的如果只顾二人真实, 那个绝对的同感台海鳗以外做了由于大众杜撰容易地举行,简便的幻想. 说不定看起来好象以象<chiobuhyorusanguungu>一样的香港电影们显现出来,极好的男人们的酷做的联合, 那样的伤食了的印象. 可是能担挑跟来了这个累发倦的话的推移的人们这个结尾重的现实的重量的事,二人通过报复这个过程为彼此孤独的痛苦身边接近的已过去的做了的 19火50分的时间存在. 不能仅仅犯了拧出不可以支付不可以安上自己的手血,法律上罪过,完美的计划的Lucifer吴升哑巴bokkusugukku一边进行一边哭摇reru的,罪的人的苛责这个女孩子想象无论如何也理解. 象不是升哑巴的不幸试着经验不的人无论如何也不明白这个的事一样地,污水的苛责也试着经验的人谁都不知道的证明痛苦.

即使甘心忍受做着象在"如果试着经验不不明白"可怕严正前提下bokkusugukku进行, 那样我的生命之类草垃圾一样地投的考虑的挂上(放上)的不好吃质地做的事想活一下的污水的贪恋也变得理解也. 不明白如果如果做了挂上(放上)的自己的生命真的价值里面别人的纯粹很轻地不是也计量了的? 他自己是不是在眼前消失担心劳苦心与〓ku女人吃心情kamujajon吃牡蛎冰受到慰劳详细地活的喜悦也变得理解. 一边理解那个喜悦连污水的忘却变得理解一边. 见报复的污水在开始时用头,末路,次用心脏,也由于到达了后边的存在,令人懊悔地使之夺取纯粹的事受害者tesongu的不幸, 那个kummoru逐渐学习深渊那样的绝望. 在tesongu经验了的不幸中污水在书库,污水的不幸中tesongu立的最后的瞬间,二人就成为了一寸的差也没有完全同样的na身姿把彼此做为完美, 那才完美理解. 找能象别人象自己别人一样地,自己一样地感觉疼怜悯做只顾那个瞬间, 终于宽恕和谢罪真正的意义. tesongu的绝对孤独终于,形成全是血的绝对的沟通以后是万的. 那么做二人的人听了彼此以后是万的. 在完全痛苦的波浪上血流互相彼此满足了以后卷了. 马上为此,状态性/吴升哑巴的bokkusugukku悲哀残忍血虽说腥绝对,绝对由于假空虚的事不能.

2.在能"看见的真实和看不见的真实":社会和激烈里(上)沟通的 <魔王>的特别的视线

象象暴风雨一样地急一个劲地的感情净化和深海一样地深蓝的寂静和和平. 此后留有了的东西等. 在这个二人的完美的悲剧的死里(上),我社会,我们世界,我们的纯粹, 过分多的东西等悬挂着. 象说不定异怪的话一样地听得见,真的在他们的肩膀里(上)那个瞬间我们生的价值和存在的希望悬挂着. 二人的宽恕和和好, so做绝对没有只有二人东西死绝对. 是这个比起洋葱皮更层多的 <魔王>的bokkusugukku有的又单层的发球文本. 很好地显出着是用<魔王>与通过升哑巴的报复我们生活的现实世界沟通的关键字不是傲慢的 “正义"谦虚的 “真实",升哑巴和污水的沟通和死这个难成就多少的事. 说<魔王>没有象别人的痛苦认可持(有)的绝对性一样地,在互相真实向生活的事应对不便多少无法负责的事或者, so就做有正义那个不是对别人的断罪只顾在互相真实向的自己的姿势这个女孩子好好地注视. 用人生来的世间的真实这个事,刀与muzarudo “正义""冷不防", 有的在叫喊着不能用善与恶这个两个极端的基准剪裁. 对全部的话能有两面的方
法, 那个两面全部勇气似乎有发出声音的时候大量更公正的社会稍微更变得近.

变得不对真实一方偏颇的机械装置在, 那(样)这个以上真实了的那个周年纪念, 总是与权力和,力量联系被做这样的事实的冷的注视在史迹的怨恨解除以上的次元突然提升升哑巴的报复. 因为他的bokkusugukku是以全面提升含自己的不幸在这个社会被不(正)当沉默的真实(野地)的后面的规划. 权力击球手的话使之沉默. 盖上保护有了既得权的加害者只是为了, 只顾没有力量被宣布了的正当防卫这个 '正式的实在地'这样的理由善良的受害者必须经验的令人懊悔的痛苦这个 '非正式的实在地'摁住. 相信"真的解释存在"牵连的人的数位的吴升哑巴的bokkusugukku是打算颠覆这样不正当的真的霸权的项目. 叫tefun的死世界的堕落,由滥用的姜污水开始力量以江东县的权力不能真的均衡完全虽然是碎片但是样子返得sokkuodoruoganda. 可是谁都没听tesongu的声音. 只顾他没有力量.

作为齐备社会的权力和富力和智力的吴升哑巴复活返回了的状态性的bokkusugukku一边开始对, 先生痰的不幸中令人懊悔地一边被沉默了的人们的声音开始沸腾. bokkusugukku一边进行谁一边都没专心听的声音们以全面浮起ausonguchinda. 言论,法体制,警察,做社会全体失败了的确实在那个座位,不正当被沉默了的少数的力量没有的声音们初婚. 使虽说zodongusobu和, 海螺妈妈, so都做黄代书,被吴升哑巴的bokkusugukku一边卷进一边也请求了院做an'addon自己也完成史迹的报复谁用强制都问对人们来说没专心听的自己的话,. 因此吴升哑巴选择了的人权律师这个功绩认同是这个bokkusugukku决定地重要. 说第一个牺牲者权力寄生歪曲真实先站立了的权力事变奢侈也不偶然. 所说的"律师与比什么都明确真实的人思念"的台词也再想的没有那样他上系结了的重量是常凡. 象没有由于只是社会的弱者这个理由强者的权力做出的真的霸权争吵再次堵塞的事一样地,为了公式化的真实刻,他必须在代偿自己利用的报复者们的声音的座位立他们的声音. 修理能这样扭的真的霸权吴升哑巴做了的巨大的战争的所谓目标,说比他不同的谁都成俊表的杀害最直接地介入象也呈现在鲜上. 在传达客观的真实这样的黎明下平时与史迹的光荣〓满足只权力欲望的腐败的记者,当然做弱者的沉默视这样的点是世间的全部的加害者们的尤其因为最坏的加害自己. 使所说的无论怎么驱出多的牺牲者也好垄断采访状态性的bokkusugukku的成俊表的建议,极端性地显出成俊表的伦理的麻痹状态. 并且吴升哑巴是总括戏剧全体一号岛?取出限度恶魔性给(你)看看严厉裁判他. 可是进入没有吴升哑巴到 20次连接的尽头地累发倦的隧道确实是这个瞬间. 社会的功绩的名分通过无论如何也蒙上的数obuuri位,报复的行为是罪没有的受害者的报复者的悲哀的魂结果弄脏的瞬间. 他在手指里放血的瞬间,在裁判这个名字下亲自在杀人者的痣里(上)戴的瞬间,所说的认为为了修理社会秩序除去了amuzokku的存在的瞬间, 那个amuzokku的存在还是以人除去了那个amuzokku的存在的人与人,裁判也请关上的认识也清醒的瞬间. 比什么都自己为了目的也滥用权力,在真的一面由于强制使之沉默了这样的认识. 是公正饥饿残忍的 <魔王>的叙事,确实在那个理由里(上)开始裁判的变得挥舞以社会的既得权者全能的权力的吴升哑巴他断罪别人.
作为是吴升哑巴的相反的极端的同时在, 这个全部的事态的震源地里(上)立了的姜污水的登场人物怎样想 <魔王>的真正的成就呢. 他的登场人物使传统性的bokkusugukku的框架全部使之成为不可能. 谁看也姜污水不是那么凄惨灭亡恰当的坏人,吴升哑巴的bokkusugukku我们不能怎样的快感也觉得. 而且吴升哑巴发出声响当然,世间谁都不知道的他的真实,全然没有他杀害朋友的意图为了倒不如根据那个伤为地狱那样的罪的所想困苦宽恕受到已过去的 12年象死一样地一边努力一边生活了. 如果那样吴升哑巴的bokkusugukku由于误解的无义微汗天空骚gi吗? 对于对哦, 这个情况真实也应对的正确的姿势的 <魔王>的严正的基准没有一缕的妥协. 因为在是污水的罪tefun履行戴了的污名成就了纯粹这样的事, 即,填埋了真实的灰漆下面坟上积累自己的纯粹取得了这样的事实, 那个东西. 变得相信与已经从刑警这个功绩的认同后开始 “恶在世间玩的事坏的东西取的人,"这个二个种类的人存在的他结果忘记了tefun的死和自己的罪. 自己的纯粹非常重要在tesongu的异常激烈的痛苦里(上),不幸没注视, 那个不正当又闭上了第结果. 忘记苦痛苦消失了的瞬间,他成为了报复有恰当的人.

在<魔王>里(上)登场的姜污水的罪,由于<复活>贪图权力,贪图富力, so做贪图爱积极地损害了别人的那时比起他们的罪一直复杂不便. 由于<复活>我们能形成对可爱的超人的同时是先生tsu被做了的正当的王子姜hyoku/haun的报复完全的同样看待沸腾返得. 可是 <魔王>污水的罪,没抱非人的恶意没办法搞了罪是, 那个其次卑怯在别人的痛苦里(上)闭上了眼的我们大家的东西. 因为是, 那样想为了我想音乐生活,掘出想质地下面幸福,我变得幸福反正其他的谁不是必须不幸, 那(样)我明白的事搞的罪恶. 作为说不是故意的伤害,对错儿和放弃不过是, tesongu经验了的不幸的深度不是变化. 可是承认这个多少,真的严重多少的事? 是错儿, 稍微外观,悔恨jingujingugori容易事多少的事?

说使在看初灌唱片 <魔王>的收看者们混乱事必须确实极好的主人公的姜污水对自己的罪实在宽大看上去象感觉迟钝中. 由于那个的bokkusugukku起来几多的人们死回顾tesongu的不幸道歉宽恕,以守护自己的纯粹汲汲做的情况也映出了姜污水. 他说"尽管如此想活"一下. "我由于如果热情生活tefun'i不知不觉也宽恕我的事相信"高度说. 从想脱掉自己怜悯爱的女人试着获得安慰打算费力做,是错儿正当化自己,辩解,由于其他的人们的原因试着转是老师的原因. tesongu前也, 那(样)现在我以刑警你是罪人, 也那么动自尊感摇reru自我,. 看非常不便这样的姜污水的身姿侵犯罪之后纯粹也活的人们真实. 死也试着活,拘束于过多纯粹的姜污水不可缺少与质地看上去不好吃. 由于<比花美丽的>zanguinchioru与姜污水相似的立场(入场)更悲剧性看上去可爱的事,他最初象古草鞋一样地扔去自己的人生,纯粹. 我们更容易地爱在杜撰中也存在的那样的美丽的人们. 可是说为了死者买了的人把我的纯粹看做象言词一样地容易的事吗? 与对污水粗俗的纯粹的不好吃的贪恋,自己的怜悯只期,向(以)想忘记生活的我们的凶汉腹中亮出镜子不便真实. 并且这样的污水的身姿,收看者的立场(入场)也要求勇断. 这个请认可你的身姿这个女孩子,真实.

显示激烈持(有)着代偿注视真的两面的这个残忍的bokkusugukku两端立了的二人社会道义的律师和刑警的认同这样的事实这个电视剧多少由于功绩社会的. 想取恶在玩的事激起了对背后操作者的斗志的刑警,对于终局坏人是谁变得不明白了. 是是敌人还是是自己变得不知道了自己追赶的人. 变得对于他们没有杀人的故意,辩护夺取了别人的生命的人们的律师,悟出了用有自己的新的自己的口辩护着元首的罪这样的自相矛盾. 断罪罪人的刑警和辩护罪人的律师, sosurupora
n也找出ro刃的真实,构图那样的, 有的在天谴(天谴)的旅程结果排列书库卷.

正面完成作为丢掉一边甘心忍受稀碎地拉被弄破的心脏的痛苦一边也明确nafi的不道德(男女关系),不掩盖七十七岁诞辰的罪断罪的污水终于与自我住的事真实会面的刑警的义务. 与海螺妈妈一边辩护nasokkujin,吴升哑巴不能用自己的口在污水的罪和自己的罪发现pen辩护的自己保住变得一边悲哀了. 江东县和最后一边单独面谈,他放弃真实以权力不能宽恕歪曲了的江东县的罪一边,作为父母爱孩子的人的心理解了.

<魔王>看正义的时候和,说罪的时候和,说宽恕的时候都做一缕的妥协不准. 用所说的正义的容易的名字不美化报复的暴力. 海螺妈妈和zodongusobu,黄代书的罪过社会的弱者这个理由也不雾化做. 即使夺取了,人的生命升哑巴阻止了由于法体制的惩罚的罪过由于不能消去的事,到(连)他们必须一生承担生活的那个痛苦变成悲伤就那样也压倒安上升哑巴的肩膀. 在升哑巴的头中规划的逻辑完美,并非一定要宽恕接受的希望也没有为计算就放入了自己的死不能, 只有用那个伟大的头理解的事是那个心脏的痛苦, 那个深度. 可是正是住的不能摁住的这个悲伤与gyonzonguchioru和江东县那样的人们弄碎吴升哑巴的心脏真实,是魂的符号. 自己不是杀人者,他们不能想试着正当化自己选择了自己的命运,他的魂回避责任. 相信污水睡塞背后操作者连锁杀人者,的话, 那(样)是正义的具体化他挂上(放上)纯粹的意义拘泥,结果认可了自己的原罪. 并且挂上(放上)的最后的瞬间,自承认完全的责任"使我以杀人者制作了你的哥哥死"你的爸爸. 并且抱歉的, 以外做那个我取了你以后也卷的话燃烧了斗志的污水tesongu让 “你那样象的有. 自承认又完全的责任故意也错儿也不重要". 二人成为这个瞬间确实这个无法负责无法负责的省察成为一个担负了我们的社会的希望的英雄们. 作为律师,作为刑警,断罪受到报应恰当的谁犯了罪的击球手,与自, 那个谁难断罪的自己内部的敌人不是在成功小楷笔上相争胜成功了.

那是过分无法负责的争吵. 升哑巴和污水转动了真实的胜正在在中逐渐象彼此过程晚已过去的做象沼泽一样地kummo被疲劳点点散在. 二人非常慢慢地接近想避开再避开再避开的真实. 并且chiabude在在废车场拉开了的最后错误起来了的事故中,被刃竖立了的真实贯通了心脏的他们都不知道世间那个谁的困苦寂寞的不间断地狱只有二个立的彼此?短的瞬间头不转从正面注视. 已经相当宽恕了前对方的, 以外做不能这个以上容许自己的罪过的二人落入一起进入了的自这个死加上了的省察的痛苦,是在真实面前比世间谁美丽崇高的二个魂的悲剧的符号的同时我们住的这个社会的希望.
您需要登录后才可以回帖 登录 | 注册

本版积分规则

联系我们|手机版|小黑屋|韩剧社区 ( 蜀ICP备14001718号 )

JS of wanmeiff.com and vcpic.com Please keep this copyright information, respect of, thank you!JS of wanmeiff.com and vcpic.com Please keep this copyright information, respect of, thank you!

GMT+8, 2025-6-26 14:00 , Processed in 0.225830 second(s), 17 queries , Gzip On.

Powered by Discuz! X3.5

© 2001-2025 Discuz! Team.

快速回复 返回顶部 返回列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