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拍摄现场
4월 6일 [애자] 촬영 현장을 가다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다고 이래라 저래라꼬." 부모에게 한번쯤 해봤을 익숙한 고성이 스튜디오를 울린다. [애자]의 촬영 현장이 있던 남양주 종합 촬영소. 영화의 주인공 '애자' 역의 최강희는 오늘 과제는 엄마 '영희'역의 김영애에게 이렇게 바득바득 대들어야 한다. 엄마가 취직하라고 해도, 결혼하라고 해도 무조건 엄마 말에는 '싫다'가 전부. '아부지 없이 자란 것도' 엄마탓, '지금 자리를 못잡은 것도 오빠만 유학 보내준' 엄마탓이다. 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TV를 보던 두 모녀는 결국 언성을 높이며 부산 사투리 말싸움 삼매경에 빠진다. 비록 이 말이 상처가 되어 엄마의 마음을 할퀴게 될 지라도 딸은 엄마를 탓하느라 바쁘고, 엄마는 그런 딸이 야속해서 부화가 치민다.
촬영 전 연습하느라, 나지막이 대사를 주고받던 김영애와 최강희는 '슛' 소리와 함께 톤을 잔뜩 끌어올린다. 그리고 실제 그들이 모녀 지간이라면, 남들이 보지 않을 방에서라면 그랬을 법한 기세로 실전에 들어간다. 흥분이 고조에 달한 순간. 그러나 김영애의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촬영장에 감돌던 긴장이 일순 풀어진다.
[애자]는 소설가 지망생인 골치덩어리 딸 애자와 그녀에겐 철천지 웬수같은 엄마 영희의 이야기다. 공부는 잘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 치기 바빴던 부산 소녀 애자, 소설가의 꿈으로 서울로 가지만 29살의 그녀에게 소설가의 문턱은 높기만 하고, 연애도 별 감흥없는 남의 일일 뿐이다. 그러던 중 엄마가 급작스레 쓰러지고, 급기야 그녀는 오빠만 오냐오냐했던 수의사 엄마와 티격태격 동거를 시작한다. 모녀의 관계 회복기에서 맛보는 웃음과 눈물. 징글징글한 모녀의 이야기인 [애자]는 작년 부산영상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김유진 감독의 연출부로 10년 넘게 현장경험을 한 정기훈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으면서 꼬인 모녀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가 무엇일까?' 해답은 식은 죽 먹기였다. 갈등이 있더라도 결국 사랑이 밑바탕되는 그런 관계는 모녀였다. 정기훈 감독은 큰 사건 없이도 그 자체로 드라마틱 할 수 있는 모녀의 심리에 주목했다. 전라도 출신이지만 '바다가 있고 모성이 느껴지는 도시' 부산을 배경으로 택했고, 그 자신 한 어머니의 아들이지만 여자친구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딸의 입장을 탐구했다. 또 천주교인 자신과 달리 영희를 불교신자로 설정하는 등 자신의 경험과는 모든 걸 반대로 설정했다. "상황은 달라져도 변하는 건 없다. 자세히 보면 나와 엄마와의 관계도 [애자]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더라. 여전히 엄마 앞에서 철이 덜 든 자식일 뿐이다." 엄마의 관심이 귀찮기만 했던 머리 다 큰 자식이 엄마의 죽음 앞에서 얻는 깨달음. 정기훈 감독은 애자의 심리를 통해 다 큰 어른의 '제2의 성장'을 보여주려 한다.
정기훈 감독은 시나리오 집필 중 주변 사람들은 물론 수소문하여 400쌍의 모녀를 만났다. '싸울 땐 주로 무슨 문제 때문에 싸우나' '화해 할 땐 어떤 방식으로 화해하나' '엄마가 돌아가실 땐 어떻게 이별했나' 실제 모녀들에게 들은 구체적인 에피소드들 중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곱게 체에 걸렀고, 하나하나 [애자] 모녀의 대사와 표정, 상황으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 [애자]의 시나리오는 도무지 남자 감독이 썼다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캐스팅 전 충무로의 여배우들이 모두 애자와 영희역을 탐냈을 정도. 그러나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딸과 엄마 역으로 두 배우를 염두에 둔 감독은 곧바로 역할을 제안했고, 두 배우 모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하루 만에 승낙했다. 사투리 연기는 처음이지만 최강희는 부산 출신 배우 김영애의 도움을 받으며 근 3개월 넘게 함께 작업을 했고 이젠 현장에서 '엄마'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올 정도로 친밀해졌다. 오랜만에 연기를 하는 김영애 역시 촬영기간 동안 감독 아들과 배우 딸을 둔 엄마가 됐다. [애자]의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연신, "엄마, 이 장면에선 좀 더 목소리를 크게 해주세요."라고 한 다던가, 애자가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는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강희씨는 아무리 진부한 연기를 주문해도 진부하지 않은 연기자고 김영애씨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귀신같은 연기를 보여주신다." 정기훈 감독은 두 연기자의 찰떡 호흡을 연신 칭찬한다.
충무로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라면 저 멀리 김혜자와 최진실이 콤비를 이뤘던 [마요네즈]가 유일하다. 남자 VS 남자, 아니면 남녀의 멜로가 주를 이루는 환경에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자칫 잘못하면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다. [애자]의 숙제는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은 드라마를 만드느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기훈 감독은 애자의 드라마 구성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웃음과 눈물의 드라마는 기본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눈물만 흘리면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가 강한 이야기, 매 장면 위트가 더해진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속도감으로 따지자면 스릴러에 맞먹는 긴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촬영 준비로 스탭들이 분주한 가운데, 김영애와 최강희의 연기 연습이 한창이다.
다소 촌스러운 이름 '애자'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독이 선택한 제목이다. 그 자체로 '상중에 있는 자식'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의미와 '슬픔'의 의미를 가진 '애'를 사용함으로써, 극중의 애자가 처한 상황을 중의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기적이면서도 자기애가 강한 주인공의 심리가 자꾸 듣다보니 잘 어우러진다. 감독은 "엄마의 뜻을 거스르며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는 애자를 통해서 비록 실패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전한다. 마침 의도치 않았지만 경제위기의 상황으로 [애자]의 따뜻한 가족애가 하나의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애자]의 투자와 기획을 한 데이지의 한 관계자는 "각박할 때 결국 돌아보는 것은 가족이다. 모녀 관계에 주목한 연극이나 소설이 최근 붐을 이룬 것도 사람들이 이런 감성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애자]가 스크린에서 이같은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를 피력한다. 영화의 70%를 차지하는 부산 장면을 마친 [애자]는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는 오는 5월 1일 크랭크업 할 예정이다. 찬 바람이 부는 9월 메마른 관객의 감성을 적셔주는 것이 목표. 현장을 가르는 감독의 시원한 '오케이' 소리와 함께 [애자]의 막바지 감동 만들기가 한창이다.
콘텐츠 제공ㅣ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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