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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菀得》刘亚仁,我仍是新人演员!
‘완득이’ 유아인, “나는 여전히 핏덩이 신인 배우”
유아인이 <완득이>를 택한 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 완득이’가 자신과 무서울 정도로 닮아서였다. 너무 안쓰러워서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는 인물 속으로, 청춘 스타와 신인 배우 사이, 그 어디쯤에서 부유하던 스물여섯 살 청년 유아인은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유아인이 직접 <무비위크>에 편지로 적어 보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생각 깊은 청년의 고민이 흥건하다.
<완득이> 시나리오가 손에 쥐어졌을 때, 인터넷엔 한창 ‘걸오앓이 신드롬’ 어쩌고 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KBS2, 2010)이 끝난 직후였다. 인기나 인지도 어느 것 할 것 없이 어중간한 채로, 7년을 배우로 살아온 연예인에게 그만큼 행복한 시간이 또 있을까. 잠깐은 순진하게 도취되어 어깨에 힘도 좀 주고 그러면 좋았으련만. 올라 갈 길은 어디고 내려 갈 길은 또 어딘지 재려니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디로 휩쓸려갈지 모를 판이었다。
나는 정확히 내가 겪은 시간과 경험만큼만, 생경하게 찾아온 인기를 이해하고 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만큼 닳은 채로 ‘완득이’를 만났다. 영화다. 그것도 열일곱 살 소년이란다. 기껏 성인 연기자의 타이틀을 달았는데, 이 아이는 처음 연기를 시작하며 맡았던 드라마 <반올림>의 ‘아인 오빠’보다 더 어린 친구다. 배우의 운명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의되고 또 그렇게 흘러가는가 보다. 나는 아역 이미지를 벗지 못한 풋내기 배우였고, 미디어는 ‘걸오’ 캐릭터야 말로 성인 연기자로의 진정한 발돋움이니 뭐니 하는 식상한 말들로 내 운명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완득이는 당시 나를 향한 눈들의 기대와 예상을 배신하면서, 동시에 내가 그것들을 떨쳐내고 초연해지도록 돕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겐 그런 상태가 절실했다. 무명의 배우들은 삶을 버텨내는 각자의 방식이 있다. 내겐 바깥세상에서 뭐라든 “개인의 성찰과 성장이 더 중요하다”며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그래, 엎질러버리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감독님과 제작사 대표님과의 첫 미팅에서 완득이를 내놓으라고 엄포를 놨다.
운 좋게도 여기까지 엎질러져 왔다. 개봉이 코앞이다.
인터넷이 떠들썩하더니 유명 극장에 대문짝만 한 포스터가 걸리기 시작했다. 인터뷰 몇 개를 끝내고, 팬들의 반응을 살피고, 몇 주 남지 않은 언론 시사며 부산국제영화제 생각에 가슴팍이 간질간질하다. 이전엔 멍청하게 지나쳐 왔던 순간들이 이번엔 꽤나 선명한 그래프로 연결되어 눈앞에 펼쳐지는걸 보니 욕심이 좀 나는가 보다. 이것부터 고백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낯선 부담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불쌍한 놈’ 영화 <완득이>에 등장하는 대사다. 세상에 달랑 둘 있는 가족이라고는 장애를 안고 있는 아버지와 삼촌. 찢어지게 가난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 학교에서 수급품으로 받아오는 ‘햇반’에 계란도 사치스러운 라면 하나 끓여 먹는 게 일상이다. 생판 모른 채 살았던 어머니는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란다. 청천벽력이다. 집 문제로 골치 썩이는 것도 모자라, 학교에서는 담임 동주의 지나친 관심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도대체 이 아이는 어디까지 불쌍할 수 있을까. <완득이>의 시나리오를 반도 채 읽지 않았는데, 나의 첫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의 종대가 떠올랐다. 어릴 적 겪은 사고로 고환이 한 쪽 밖에 없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어머니를 둔 역시나 찢어지게 가난한 아이. 총 한 자루 가지면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철없고 허황된 소원을 품은, 과거의 소년을 떠올리며 운명 속에서 제대로 몸부림 한 번 치지 못하는 완득이가 더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온전히 제 것으로 받아들이고 숨죽인 소년. 그것이 완득이다. 연민이라는 3인칭의 시선이 아니라 온전히 개인의 불행 속으로 들어가 완득이의 짐을 내가 짊어질 수 있을까.
완득이의 세상을 다 들여다보기도 전에, 정신적 고통보다 육체의 고통이 먼저 찾아온다. 액션스쿨에서의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완득이의 탈출구는 킥복싱이다. 정작 한 번도 뱉은 적 없이 집어삼키던 고통이 비로소 킥복싱을 통해 완득이의 육체로 쏟아진다. 눈 두덩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피멍이 앉는다. 나는 매일같이 반나절을 야구 연습과 체력 훈련, 복싱 연습으로 보냈다. 이런 훈련이 처음은 아니었는데도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운동은 적성이 아니었다. 한번은 감독님에게 성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왜 영화 속의 청춘들은 음악 아니면 운동밖에 돌파구가 없느냐”고. 반은 투정이고, 반은 진심이었다. 세 달을 가까이 채우니 체대 입시생이 다 됐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엷게 밸 때쯤 <완득이> 촬영이 시작되었다.
항상 내가 다시 영화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매번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질 때마다 그랬다. 전작이 내려진 후엔 감정보단 현실적 불안이 더 크게 나를 짓눌렀다. 나는 캐스팅하기에 충분히 부담스러운 배우가 되어 있었다. <하늘과 바다>(2009)가 개봉한 지도,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나 보다.
하지만, 여전히 핏덩이의 신인 배우로 나는 다시, 현장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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