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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어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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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이끼>는 걸출했다. 가늠할 수 없는 악과 그것에 맞서 버둥거리는 무력한 자의 이야기였다. ‘누구’가 중요했을 뿐, <이끼>의 영화화는 자명했다. 강우석과 박해일과 정재영, 믿음직한 이름이지만 우려는 끊이지 않았다. 자, 이제 ‘어떻게’가 남았다. 관객보다 미리 본 에디터들이 강우석의 '이끼'에 대해 말한다.(주의! 스포일러 강박증이 있다면 페이지를 돌리시길)::이끼, 웹툰 이끼, 영화 이끼, 이끼 반전, 강철중, 공공의적, 극락도살인사건, 세븐데이즈, 윤태호, 강우석, 박해일, 정재영, 유준상, 허준호, 유해진, 유선, 김상호, 김준배, 엘르, 엣진, elle.co.kr::
줄거리: 류해국(박해일)은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아버지 류목형(허준호)이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살던 마을로 간다. 이 마을 사람들은 류해국을 반기지 않는 눈치다. 해국은 거대한 비밀을 숨긴 듯한 마을 사람들과 이장 천용덕(정재영)의 진실을 파헤쳐 간다.
대담 참여자: 전종혁, 이민희, 김나래 에디터
전종혁(이하 종혁): 영화 어떻게 봤어?
<이끼>는 첫날 14만 명이 봤더군. 7월 중순 이후의 박스 오피스는 <이끼>나 <인셉션>의 결투장이 될 것 같아. 쉽게 얘기하면 충무로 넘버 원 강우석의 파워와 워너의 배급력 사이의 싸움으로 볼 수 있겠지. 개인적으로는 둘 다 기대에 약간 못 미치지만 오늘은 일단 <이끼>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민희(이하 민희): 저는 원작을 봤거든요. 분위기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혹시나 싶어 웹툰을 다시 한 번 봤어요. 마지막만 빼 놓고 대사 자체는 똑같던데.
종혁: 만화나 영화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
민희: 만화가 훨씬 더 어두워요. 강우석 감독 영화에선 악역도 항상 인간적이고 희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잖아요. 만화에서 천용덕(정재영)은 좀 더 깊고 질척한 ‘절대악’이어서 무서웠는데…
종혁: 여자들이 많이 예매를 했더라고. 박해일에 대한 인기인가? 스릴러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보는데. 나랜 어때?
김나래(이하 나래): 재미있었어요. 원작 웹툰을 봤다면 비교해야 했기 때문에 외려 집중을 못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근데 긴장할 상황에서 딱 그걸 유도하는 음악이 흘러 나온 게 좀 뻔하단 생각도 들었어요.
종혁: 약간 머리 나쁜 사람조차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는 거지. (웃음)
민희: 다들 연기를 진짜 잘 했죠?
종혁: 기자 시사회에서 기자들의 대다수 평가는 ‘영화는 약간 지루했으나 배우들의 연기가 살렸다’ 거든. 사실 비판을 하자면 2시간 40분이 너무 길게 느껴졌어. 관객들이 ‘미드’를 한번도 안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것 같다니까. 그동안 굉장히 속도감 있는 영화들이 많이 등장했었는데, 과거로 돌아간 측면이 있어. 원작을 영화로 바꾸기 위해서는 전체 구성이 단순하면서도 캐릭터가 살아있어야 하는 건 맞아. 아쉬웠던 건 류해국(박해일)이야. 물론 연기를 못했다는 건 아니고,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인물이 된 것 같아. 보통 필름 느와르 영화에서 잘 나오는 인물이 이래.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뭔가를 파헤쳐보려는 마음이 강력해서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다 끝까지 가는 전형적인 인물이거든. 아무래도 강우석 감독의 캐릭터 문제일 듯한데 약간 표피적이더라.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천용덕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
민희: 저는 <공공의 적>이 떠올랐어요. 강철중을 류해국(박해일)과 박민국(유준상)으로 나누어 놓은 것 같아요. 역시나 천용덕(정재영)도 항상 강우석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적 악당 느낌이었고요.
종혁: 정재영이 연기하니까 더 그렇지.
민희: 아무래도 감독의 페르소나니까 그렇겠죠? 또 글씨를 눈으로 읽는 것과 연기하는 목소리를 듣는 게 참 다르잖아요. 박해일 캐릭터가 표피적이라고 하셨는데, 연기할 때 발음하는 어조 같은 것도 딱 ‘강우석 표’에요. 받고 치고 하는 게 정해져 있었다는 느낌이랄까. 감독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게 뭔진 알겠어요. 근데 어떤 한계 이상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진 않았고.
나래: 저는 좀 더 무서워도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조마조마하게 느꼈던 건 정말로 무서워서 그랬던 게 아니었거든요.
종혁: 예전에 <극락도 살인 사건>을 300만 명이 봤거든. 요는, 관객은 기대하는 바에서 살짝 어긋나는 걸 좋아한다는 것. 근데 <핸드폰> 같은 영화가 안 된 건, 그 어그러지는 부분이 멜로였기 때문일 거야. <극락도 살인 사건>은 보통 스릴러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귀신이 나오니까 얼마나 무서워.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지만, 관객의 만족도를 얼마나 충당시킬 수 있는지도 중요해. <이끼>엔 2시간 40분 동안 놀라게 하는 게 마땅히 없어. 그냥 긴장감만으로 끌고 가거든. 강우석 감독의 한계도 있고, 한국 영화의 한계도 분명히 있는 거야. 일반 대중이 어느 정도는 쫓아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의해서 일반화 시키는 경향이 있는 거지. 만약 다른 감독이 만들었으면 분명히 흥행은 좀 떨어지겠지만 영화에 플러스 요소가 더 있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봐야지. 컬트나 호러를 <이끼>에서 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좀 무서웠다면 500만 명은 봤을 영화야.
민희: 원작은 캐릭터에 대해 다 설명하는데 거기에 호러 요소가 좀 있어요. 영화엔 김덕천(유해진)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던데요. 김덕천은 할머니 귀신을 보는 것 때문에 항상 약을 먹고 있었는데.
종혁: 플러스 알파가 없는 거지.
민희: 저는 그 ‘플러스 알파’를 호러가 아니라 정치권력적 구도를 심화 시키는 것으로 대신했어야 한다고 봐요. 사람들이 그걸 기대했을 것 같아요. 만화에서는 꽤 깊게 들어갔거든요. 그때 한창 노무현 대통령 서거할 무렵이라 그것과도 맞아 떨어져서 붐이 일었던 거고요. 만화 마지막에 청와대 쪽 지도를 확 비춰주는 게 나와요.
종혁: 사실 천용덕이 죽을 때 막 내뱉는 말이 상당히 정치적인 얘기잖아. 오히려 그건 자제한 것 같아. 그런 식으로 나가면 대중적이지 못하니까.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는 건 억지로 끊은 느낌이 있어.
나래: 그래프가 있다고 치면 딱 그 평균선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종혁: 대중과의 싸움이라고 하면 평균치는 유지하되 속도는 빨라야 하거든.
민희: 뉘앙스가 풍부한 만화였는데. 이것 저것 다 쳐내고 깔끔해진 거죠.
나래: 틈이 없다는 거야?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에게 생각할 요소가 없달까, 개인적으론 생각 할 요소를 줘야 좋은 영화라고 보거든. 주제는 분명한 영환데, 남아 있는 느낌이 없어.
종혁: 영화에서 주제를 찾으려고 하지마!(웃음)
나래: 저는 그런 게 좀 아쉬웠어요. 세트장을 활용해서 풍부한 부분을 표현 할 수도 있었을 거고.
종혁: 강우석은 장르적 스릴러에 천착하지 않았어. 호러에 관심을 둔 것 같지도 않고,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니까 아예 그 쪽으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거지. 배우들이 열연을 했는데도 평면적이야. 관객의 눈높이와 맞추다 보니까, 다양한 개입의 여지를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은 것 같아.
민희: 우리나라 관객들 수준을 너무 낮게 본 것 같은데(웃음)
종혁: 영화 <세븐 데이즈>를 보면 미드에서 볼 법한 속도가 있잖아. 의외로 1,2년 빨리 나왔으면 잘 안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이끼>는 캐릭터를 잘 만들긴 했지만 속도는 확실히 느리게 느껴졌어. 이미 ‘본 시리즈’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아서 웬만한 속도는 재미 없다고 느껴지는데, 사이사이의 느슨함을 과연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네.
민희: 전 잘 될 것 같아요. 적당한 속도감, 연기 잘 하는 배우, 이미 웹툰으로 검증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반전도 있고요.
종혁: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반전이지.
민희: 나래가 영화에 대해 별로 할 얘기가 없다는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종혁: 지적하고 싶은 게 또 있어. 강 감독님 영화는 여자 캐릭터를 그리는데 서툴잖아. 유선이 연기를 못한 게 아니라, 캐릭터를 그리는 힘이 약한 것 같아.
민희: 이영지(유선)가 영화에서 원작보다 큰 역할을 하는데, 다 떠 안지 못해요. 선이 너무 가늘어요.
종혁: 원래 캐릭터에 비해서는?
민희: 원래는 좀 더 나이도 있고 눙을 칠 줄 아는 여자거든요. 영화 속 이영지는 오히려 청순하거나 청승맞아요. 슬퍼 보이잖아요. 좀 더 육덕지고 색기가 있었어야 했어.
종혁: 굳이 노출 신이 없더라도 분위기에서 그런 게 있어야지.
민희: 가상 캐스팅 얘기가 오갔을 때, 사람들이 추상미나 박시연 같은 타입의 배우를 추천하던데요. 확실히 갭이 있어요. 끈적끈적한 느낌이 영화에서 싹 사라졌어. 너무 산뜻해요.
나래: 실제로 유선이 나왔던 컷도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종혁: 아냐, 주요 배역이 8명인 걸 고려하면 그 정도면 꽤 있었지.
나래: 그럼 존재감이 없었다는 건가요?
종혁: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영지를 눌러 놓으려는 의도는 있었을 거야. 아무튼 결국 관객들은 천용덕과 류목형(허준호)이 만들어 놓은 마을에 들어가서 일을 지켜보는 건데, 어느 순간 ‘그래 알아서 해’ 하는 생각이 들더라. 박해일이랑 싸우는 사람은 결국 류목형에게 죽어나가는 셈이 되고.
나래: 류목형의 이야기가 좀 빠진 것 같아요. 천용덕과 합세를 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쉽게 결정되었다고 할까?
종혁: 나는 그 부분이 정치에 대한 은유라고 느껴졌어. 사람들이 다들 어떻게 포장하고 있든 서로의 이점이 만나는 부분만 있다면 쉽게 뭉쳤다 떨어졌다 하잖아. 감독님이 그렇게 의도했던 거라 믿고 싶어.(웃음) 게다가 그걸 설명 안 해야 그 전사가 더 궁금해지는 효과도 있으니.
나래: <이끼>의 등장인물은 권력자와 권력자가 아닌 자로 나눌 수 있었던 거죠.
종혁: 그래도 <이끼>가 <한반도>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 게, <한반도>는 표면적 권력만 보여주고, 권력의 작동원리를 보여주지 못해. 근데 <이끼>는 그걸 전반부에 확실히 보여주지.
민희: 그건 원작의 힘일 수도 있어요. (웃음)
나래: 마을 자체가 너무 외진 데 있었잖아요. 쉽게 나가고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별로 흥미롭지 않았어요.
종혁: 근데 그건 그냥 게임의 법칙이라고 봐야지. 그런 걸 따지기 시작하면 영화적 게임이 무너지는 거고.
나래: 좀 더 들어가서 헤맸음 좋겠는데. (웃음)
종혁: 이 마을의 공포는 30년이나 은폐되어 있었으면서도 겉보기에 다른 마을과 아무 차이 없이, 누구나 들어가기 쉽다는 거 잖아? 우리가 의미 부여하고 있네.(웃음) 어쨌든 이끼의 마을이든, <인셉션>의 가상 마을이든 어떤 마을을 선택하는지는 관객의 선택에 달렸지. 둘 다 영화는 2시간 40분이야. <인셉션>은 쿨하고, <이끼>는 좀 끈적하다고 할까? 민희: 자 그래서 <이끼>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종혁: 뭔가 찜찜하다! 근데 돌에 이끼가 많이 끼면 돌이 부숴지나? 음. 이끼라는 의미가 무엇을 뜻할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어. 돌에 이끼가 많이 끼면 결국 돌을 고립시키잖아. 마치 <어바웃 어 보이>의 교훈처럼 인간을 각자 섬으로 만드는 것 같아. <어바웃 어 보이>에서는 인간은 쇄사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섬이라고 하지만, <이끼>를 보고 나서는 결국 자신의 욕심으로 꽉 들어찬 개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 원작자나 감독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젖은 낙엽보다 차라리 이끼처럼 살도록 합시다.
나래: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예상대로의 영화였어요. 내가 요새 이끼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
민희: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어.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다른 감독이 또 다른 버전으로 리메이크 해줬으면 좋겠어.
종혁: 원작을 제대로 살린다고 한다면 이건 뭐 4부작 드라마가 되겠지. 영화라는 구조 안에 제대로 살리려면 그대로 쏟아 붓기보다는, 얼마나 자기 생각대로 재구성과 재배치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라고 봐.
민희: 우리나라도 요새는 만화 소설 원작으로 영화를 많이 만드는데, 두 분야가 참 다른 점이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원작 웹툰의 구성이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네요.
종혁: 최근 만화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엔 그래도 <이끼>가 제일 훌륭한 듯 싶네. 적어도 사람은 제대로 그렸으니까. 나랜 마무리 발언 안하고, 왜 이끼처럼 책상에 딱 붙어있니?
나래: (졸린 눈으로) 아, 네! 마감이라서...
종혁: 넌 딱 마감하는 이끼 같다.
민희: 아, <인셉션> 빨리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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