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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ASIA 朴海日│미스터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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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미로 들리는데? 농담입니다. 하핫.” 하나의 단일한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는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해 박해일은 슬쩍 농담을 던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것이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그의 최신작 <이끼>의 원작인 동명 웹툰 외에도 수많은 웹툰의 가상 캐스팅에서 종종 수위를 차지한다는 귀띔에 대해 “내가 만화 캐릭터처럼 생겼나?”라고 반문했던 것 역시 농담인지 진짜 궁금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단순히 모호하다는 뜻이 아니다. 모호함이 이쪽도 저쪽도 아닌 희석된 무언가라면, 기분 좋게 울리면서도 낮게 침전하는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모호하다기보다는 살짝 여과된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종종 볼 수 있던, 창호지를 통해 비추는 햇빛마냥 해사하되 눈부시지 않은 그의 미소처럼. 그 여과지를 한 꺼풀 벗겨낸 뒤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러한 호기심은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그 자체로 하나의 미스터리로 만든다. 우정출연에 가까웠던 <좋지 아니한가>의 영화 정보에 명시된 ‘미스터리한 선생 경호’라는 역할처럼. 그리고 그가 출연한 작품 역시 미지수 X가 낀 수식처럼 완결되지 않은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답을 아는 문제를 기어코 다시 검산하게 만들다
연쇄살인 용의자일 때도(왼쪽) 첫사랑의 주인공일 때도 박해일은 늘 결말에 대한 예상을 유보시킨다.
해맑아 보이지만 그 투명함 때문에 더더욱 속을 알 수 없는 연쇄살인 용의자로 등장했던 <살인의 추억>이 박해일이라는 미지수의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이라면, 그 자체로 미스터리 스릴러인 <극락도 살인사건>은 이런 가능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작품이다. 사실, 범죄 사건을 풀어나가는 해결의 주체가 실은 범죄의 주체더라는 모티브는 그리 신선하진 않다. 하지만 결국 극 중 대부분의 인물들이 극락도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박해일이 연기한 보건소장 제우성은 끊임없이 극 중 인물들을, 그리고 관객을 교란하며 섣부른 예상을 못하게 만든다. 왠지 사건을 해결해줄 것만 같은 믿음직스러운 목소리와 그럼에도 그 안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없는 눈빛으로. 이미 결말이 제시된 상황에서 시작되는 <10억>에서 그가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민철(박희순)의 음모를 파헤치는 기태 역을 맡았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미 답을 알고 시작하는 수학 문제를 기어코 다시 검산하게 만드는 이 불가해한 존재.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박해일은 미스터리 스릴러 전문 배우가 아니다.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정말 흥미로운 건, 이처럼 이미 미스터리적 요소를 갖춘 작품을 벗어나서도 결말에 대한 예상을 유보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인어공주>에서 젊은 진국과 연순(전도연)의 연애담은 이미 부부의 연을 맺은 나이 든 연순(고두심)과 진국(김봉근)의 현재의 모습 이후에 등장하기에 이미 결말이 정해진 것이었다. 선한 미소의 우편배달부 진국과 그런 그를 연모하는 연순은 결국 사랑을 이룰 것이다. 하지만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대신 한글을 가르치는 진국의 모습은 그 둘의 연애를 결말을 설명하기 위한 과정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두근거림으로 만든다. 박해일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던 <연애의 목적>은 어떤가. 그가 연기한 영어 선생 유림은 교생으로 온 홍(강혜정)에게 “같이 자고 싶다” 말하고, 섹스 중에도 자신의 쾌감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지나치게 솔직한 인물이다. 하지만 선배 교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회식 이후 둘만의 술자리를 만들어내고 육체적 관계에 집착하는 이 캐릭터는 그럼에도 한 마리 수컷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스토킹에 가까운 집착으로 홍의 과거를 알게 된 그가 사랑 운운하고, 자신들의 관계를 숙덕거리는 학생들에게 난폭한 체벌을 가할 때, 놀랍게도 이 속물이 정말 홍을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잔잔한 수면 아래, 가늠할 수 없는 깊이
마을사람들과 정면으로 대치하는 해국의 싸움 또한 박해일에 의해 쉽게 예상할 수 없게 된다.
아주 도드라진 미남도, 그렇다고 소위 개성파라고 보기도 어려운 외모를 가진 그가 정작 작품 안에서는 이질적인 이방인 역할을 종종 맡았다는 건 그래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일제강점기, 여학생들에게 익숙하다기보다는 신기한 존재인 모던보이(<모던보이>), 외딴 섬에서 홀로 또박또박 서울 말씨를 쓰는 의사(<극락도 살인사건>), 해녀만 가득한 섬에서 홀로 빛나는 청년 우체부(<인어공주>), 가족 구성원임에도 언제나 삐딱하게 불협화음을 만드는 둘째 아들(<괴물>)에 이르기까지 그는 일종의 이물질이 되어, 평화롭게 혹은 빤하게 돌아갈 수 있는 플롯의 톱니바퀴를 살짝 일그러뜨린다.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 내려와 마을 사람들 각각의 비밀을 파헤치는 유해국 역을 맡은 <이끼> 역시 아마 이러한 흐름 안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버지(허준호)의 죽음과 마을 사람들이 연관됐을 거라 여기는 해국의 의심이 플롯의 동력을 이루는 이 작품에서 흥미롭게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더욱 열심인 건, 과거가 있는 마을 사람들이 아닌 해국 본인이다. 강우석 감독은 그에게 천용덕(정재영)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는 “남성적이고 직선적인 캐릭터”를 요구했지만, 오히려 이 작품의 대결 구도가 정말 치열해질 때는 그 직설적인 에너지를 박해일이 특유의 평온한 얼굴 안에 감추고 역시 능청스럽게 감정을 감춘 천용덕과 마주할 때다. 몰래 전석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집에 연결된 통로를 조사하다가 들키자 “이런 상황에서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거나, 그런 전석만을 실수로 죽이고서 아무 일 없었던 듯 사고 현장에 나타날 때, 여간내기가 아닌 이 이방인은 마을의 미스터리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한다. 또한 그럼에도 이 싸움이 해국의 승리로 끝날 거라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것 역시, 해국이 여과된 표정 안에 억누른 두려움의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끼>의 유해국은 강우석 감독이 요구한 강렬하고 직선적인 에너지와 그것을 두꺼운 여과지로 감싸 드러낸 박해일의 연기가 팽팽한 길항을 이루면서 내면의 깊이를 얻은 캐릭터다. 이는 박해일의 말대로 “전환점이나 그런 것까진 아니”지만 이 미지수 X와 같은 배우가 어떤 작업 환경에서도 결코 쉽게 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방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한 번 더 드러낸 이 순간조차도 박해일은 잘 알 수 없고, 그래서 더 알고 싶은 미스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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