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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약국집 아들들' 장남역 손현주
'松藥店的兒子們' 長男 孫賢周
배우 손현주(44)는 좀처럼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드라마라는 시소, 그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묵직하게 몸을 낮추는 걸 택한다. 막장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이나 도박 소재 드라마 '타짜'에 출연할 때조차 그는 과장(誇張)하는 법이 없었다. 소주잔을 쥐고 앉아 눈물 섞인 웃음을 씩 웃는 게 고작. 한데도 시청자들은 그가 연기한 인물을 또렷이 기억한다.
KBS 2TV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맏아들 '송진풍'을 연기하는 손현주는 차분하다. 모두가 코미디를 보여주려고 몸을 날릴 때 그는 맞선 나온 여자를 향해 진지하게 묻는다. "제 얘기가 재미있나요?"라고.
손현주라는 무게중심. '솔약국집 아들들'이 치정과 불륜, 복수극도 없이 주말 황금시간대(저녁 7시55분) 시청률 20%를 달성할 수 있었던 힘도 여기서 나온다. 8일 여의도 KBS 녹화현장에서 만난 손현주는 슬리퍼 차림이었다. "주인공이 워낙 폼 잡을 줄 모르는 사람이어서요…."
―코미디 드라마인데 혼자만 진지하더라. 그래서인지 더 기억에 남는다.
"송진풍이라는 인물은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도 없고, 나이 마흔 넘도록 여자 한번 제대로 못 사귀어봤다. 이런 사람까지 웃기려 들면 코미디가 오히려 망가진다. 드라마가 떠 있을수록 내가 눌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은 손현주씨를 두고 "털털하고 남자다운 사람"이라 하지만 지금까지 극에선 소심하고 안쓰러운 사람만 주로 연기해 왔다.
"생긴 게 워낙 소심하니까(웃음). 진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얼굴도 크고. (사진기자를 가리키며) 저분보다도 오히려 내가 평범하게 생기지 않았나. 연기라는 건 폼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사는 게 알고 보면 슬픈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남자치고 우는 장면을 참 많이 찍었다.
"드라마 '장밋빛 인생'이나 '조강지처클럽'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바닥에서 우는 사람들은 소리 지르면서 우는 대신 몸을 떨면서 운다. 소리칠 기운도 없거든. 그걸 보여주려고 했다."
―그동안 가장 많이 한 역할이 '사위'라고 농담했던데?
"대가족 드라마를 많이 찍었다. 어른들하고 연기하는 게 좋다. 변희봉, 백일섭, 김용건, 윤미라 같은 분들하고 연기하다 보면 완벽하게 연기할 필요가 없어진다. 애써 연기 안 해도 리듬이 몸에서 흘러나온다. 그게 진짜 드라마 아닐까."
―애드리브(즉흥 연기)를 잘 안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연기를 잘하진 않는 것 같고, 어설픈 즉흥 연기는 오히려 극 흐름을 깬다. 대신 대본을 하루 종일 읽고 분석한다. 모니터를 하면서 '저땐 너무 나갔구나' '아 내가 놓친 게 있구나' 하고 반성한다."
―그래도 늘 소시민 역할만 하다 보면 질릴 텐데. 성격 강한 배역이 욕심나진 않나.
"극단 '미추'에서 1인15역, 1인20역을 하면서 연기를 배웠다. 어떤 역을 맡느냐 보단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더 중요했다. 욕심낸다고 배역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그 사실을 터득한 건 아닐 텐데?
"젊은 시절엔 물론 많이 힘들었다(웃음). 초창기엔 단막극 캐스팅됐다가도 '너 이제 그만 나와라'는 말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여기가(명치 끝을 가리키며) 참 아팠다. 운 좋게 김운경 작가나 이영희 PD 같은 사람들 만나서 구제받았고, 여기까지 온 거지. 요즘 젊은 친구들 보면 처음부터 너무 안달하는데, 빨리 올라갈수록 내려올 때 현기증을 느끼고 헤매게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토크쇼에 나오는 것도 거의 못 봤다.
"예전 아침 프로그램 토크쇼 나갔다가 말 잘못해서 고생한 적 있다. 이후론 안 나간다. 연기자는 말이 많으면 안 되는구나…, 그때 알았다. 대신 책 읽고 신문 열심히 보려고 한다. 신문·잡지 꼬박꼬박 보고 '한비자' 같은 고전이나 소설도 닥치는 대로 읽는 편이다."
―조만간 연극판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들었다.
"혜화동에서 연극하던 선·후배들과 삶은 계란 하나 안주 삼아 밤새 마셨던 소주가 제일 맛있었다. TV 나오던 놈이 연극 다시 한다고 하면 잘난 척하는 것 같고 건방 떠는 것 같아 보일까봐 계속 망설이고 있긴 하지만. 거기서 다시 부딪히면서 처음부터 배우고 싶다. 겨우 능선에 올랐으니 정상까지는 한참 멀었다. 천천히 가려고…. 안 그러면 무릎 나가니까. (웃음)"
from: 조선일보 & 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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