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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서 독기 품은 여인 역할 전인화
"나이들어 못한다하면 자존심 상해 그래서 더 악착같이 하죠"
"막장 설정요? 당시에는 흔했던 시대의 아픔이죠. 그 잘못된 고리를 하나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이 누군가에겐 막장처럼 느껴지겠지만 누구에겐 곧 자기 모습이기도 한 거예요. 들추고 공개하면 무조건 '막장'이라 하는데, 안타까워요."
KBS 2TV 새 수목극 '제빵왕 김탁구'에 출연 중인 탤런트 전인화(45)는 우아했던 눈가에 잔뜩 독기와 힘을 품어야 했다. 지난 11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인화는 극중 1960~70년대 뿌리깊었던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한 맺힌 삶을 살아야 했던 '서인숙'을 "아픔 때문에 뒤틀린 인생을 살게 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주 첫 방송된 드라마에서 '서인숙'은 궁지에 몰려 더 나빠지는 여자를 연기한다. 남편(전광렬)은 가사 도우미(전미선)를 임신시켰고, 시어머니는 아들 편을 들며 아들 못 낳은 며느리를 구박한다.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이 없다"는 점괘를 받은 그녀는 남편의 부하와 하룻밤을 보내고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끝내 남편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평소보다 센 캐릭터라서 고민도 좀 했어요. 평소 작품을 판단할 때 악녀, 현모양처를 가리지 않지만 서인숙의 영혼과의 싸움을 제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죠." 첫 방송 후, '카리스마 있다' '제2의 미실 같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배우라면 누구나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며 "그래도 시청자들의 그런 반응이 감사하고 더욱 힘이 난다"고 했다.
'제빵왕…' 전작인 '신데렐라 언니'도 그랬지만, 드라마를 지탱하는 건 중견 연기자들이다. 젊은 연기자들의 존재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인화는 "그럴 때일수록 내가 더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생긴다"며 "옛날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갔는데, 지금은 대본을 받을 때부터 부담감이 올 정도"라고 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이거 못한다, 저거 못한다 하면 자존심 상하잖아요. '내가 이까짓 걸 못해?' 하면서 더 치고 나가게 되죠."
하지만 중견 연기자들의 연기 폭이 다소 좁은 것도 사실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2009) 때도 중년의 사랑을 제대로 그리려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깊이 있는 터치를 못했어요. 노골적인 묘사에 대한 금기가 있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지만, 중년의 사랑을 덮어놓고 불륜, 막장이라고 보는 시각이 아쉬워요. 그러면 결국 중견 배우는 '아빠, 엄마'만 해야 하거든요."
1985년 스무살 나이에 드라마 '초원에 뜨는 별'로 데뷔한 그는 데뷔 4년째 탤런트 유동근과 결혼했다. 나이로는 9살, 배우로도 한참 선배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그에게 "좋은 선배이자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늘 제게 '네가 갖고 있는 틀을 부수라'고 해요. 특히 우리 또래 연기자들의 (제한된) 연기 폭을 넓히라고 하죠. 제가 늘 안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이고, 그래서 일찍 결혼한 것에 대해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40대 중반에 아직도 화장품 전속모델을 할 만큼 고운 미모를 자랑하는 그이지만, 집에선 "애들 학원 데려다 주는" 고교 3학년, 2학년 자녀의 학부모다. "나중에 애들이 '엄만 뭐했어'하고 물을 때, 할 말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다작(多作)을 하지는 않는다. 2001년 '여인천하', 2008년 '왕과 나', 이듬해 '미워도 다시 한번'이 전부다. 요즘엔 시간이 비면 미술을 공부하는 딸과 집안 작업실에서 도자기를 굽는다. "제가 철이 좀 늦게 났어요. 옛날엔 내 울타리만 지키려고 했지만 어느 날 곁가지를 칠 수 있게 됐죠. 욕심내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게 좋아요. 그리고 사실, 제가 뭘 더 바라겠어요.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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