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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기자시사 - 숨 막히는 밀당의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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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호 no33
앙뚜라지는 <이끼> 제작보고회 기사에서 싱크로율 일백 푸로의 주인공,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훌륭한 조연배우들, 원작의 배경을 완벽하게 구현한 세트까지 모든 것이 갖춰진 이 영화에 기대감을 표한 바 있다. 남은 것은 각색과 연출 뿐. 과연 완성된 <이끼>는 이러한 기대감을 얼마나 만족시켰을까? 앙뚜라지가 동인녀를 대표해 이를 확인했다.
이미 개봉된 영화 <이끼>는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이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순조로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원작의 팬들은 다소 실망하는 반응인데 비해 원작을 접하지 못한 관객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듯하다.
영화는 강우석 감독의 연출로 원작보다 훨씬 밝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우석 감독의 기존 작품과는 분명히 차별성을 띈다. 2시간 반이라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서스펜스를 잘 유지해가고 있으며 간간히 끼어드는 코믹한 설정들은 이따금 긴장감을 깨버릴 때도 있지만 대체로 잘 어우러져 캐릭터들의 입체감을 살려주고 있다.
원작을 비교적 충실히 따라가고 있던 영화가 원작의 노선에서 급선회해 차별화를 꾀하는 지점은 바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부터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가 강우석 감독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원작에서 유목형은 선인이 아니었다. 스스로 선지자 행세를 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인간이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죽음을 이용해 자신을 꼭 닮은 아들을 끌어들여 끝끝내 치밀하게 천용덕 이장을 파멸시킨다. 악으로 악을 심판한다. 연출과 내러티브가 훌륭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만화 <이끼>가 걸작으로 칭송될 수 있는 것은 인간사를 꿰뚫는 바로 이러한 철학적인 부분 때문일 것이다.
영화 <이끼>는 원작의 심오한 철학과 은유를 포기하고 간명한 선악 대립구도로 대체한 후 원작에는 없었던 회심의 반전을 추가한다. 깊이는 사라졌지만 대중성을 고려한 선택일 것이며 이는 흥행을 위한 하나의 전략일 뿐이니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을지언정 잘못된 선택이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명백한 실수로 보이는 부분은 클라이맥스 부분의 연출이다. 모든 캐릭터들이 설명조로 변명을 하고 장황하게 회상씬이 끼어들고 또다시 악을 쓰며 서로를 추궁하고 권총으로 실랑이가 반복되는 이 장면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손발이 오그라든다. 너무 감정과잉이라 손발이 오그라들던 <실미도>의 결말을 다시 한번 재현해놓은 느낌이다. <이끼>가 강우석의 변신의 기점이라고 선뜻 말하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장면 때문이다.
▲ 영화로 옮기며 분명해진 선악 대립구도. 천이장은 악이고 유목형은 선이다(왼쪽). 손발이 오그라드는 클라이맥스. 화룡점정 해야 할 부분이건만 점을 잘못 찍었다(오른쪽).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평은 이쯤 해 두고 동인녀라면 솔깃할 수밖에 없는 영화의 동인적 요소를 한번 짚어보자. 동인적 요소만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누가 뭐래도 넘치는 떡밥을 신나게 주워 담을 수 있는 훌륭한 영화다.
천용덕 이장을 연기한 정재영은 모 인터뷰에서 천이장에 대해 어찌 보면 순진한 사람이다, 힘으로도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으면서 굳이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으려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정재영의 캐릭터 해석이 빛을 발해 영화 속 천이장은 마을의 절대군주이면서도 수족들을 매우 아끼고 있는 인상을 주고 마을 주민들 사이에도 깊은 유대감이 느껴진다. 원작의 천이장이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짐승 같은 수족들을 그저 이용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이러한 끈끈한 유대감 덕분에 영화 속 마을은 더더욱 천이장의 할렘과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천이장의 취향이 심하게 독특해 이 할렘에 몰입하기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 유독 유대감이 돈독한 천이장 할렘. 그분 참 취향도 독특하시다. 성규는 석만의 죽음에 분루를 쏟고 천이장은 그런 성규의 옷깃을 매만져 달랜다. 또한 천이장은 수족인 덕천에게 니가 좋아서 때렸던 것이라 고백한다.
천이장의 취향이 지나치게 독특하다보니 영화의 핵심 커플링은 반대쪽으로 넘어간다. <이끼>의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는, <이끼>의 진정한 비주얼 쇼크 박민욱 검사(유준상 분)와 유해국(박해일 분) 커플이다. 짧게 자른 머리와 은테안경의 샤프함, 절정의 정장 간지를 자랑하는 박민욱 검사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영화의 분위기를 등장할 때마다 환하게 밝혀주는 한줄기 서광으로 작용한다. 요정의 비주얼을 가진 이 검사는 마을에 깃든 어둠을 몰아내고 “당신은 잘못 한 게 없습니다. 당신 좋은 사람이요, 유해국씨”라는 말로 해국의 무거웠던 마음까지 치유해준다. 그야말로 치유계 요정검사라 할 만하다.
박민욱 검사와 유해국의 밀고 당기는 애정행각은 동인녀에게 더없는 즐거움이 선사한다. 이 숨 막히는 밀당이야말로 <이끼> 최고의 서스펜스다. 유해국이 전화를 걸면 박검사는 투덜거리면서도 결코 전화를 받지 않거나 수신차단을 하는 일이 없다. 심지어는 본격적으로 침대에 누워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 주고받는 것이 연인들끼리의 전화통화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해국에게 조사 안 해주겠다고 츤츤대면서도 뒤로는 이미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 있고 죽을 뻔 했다는 해국에게 진짜 죽을 때까지는 전화하지 말라면서도 많이 다쳤냐, 병원은 갔냐 은근히 물어보는 박검사는 전형적인 츤데레. 박검사와 해국의 전화통화 내용을 엿들으며 은근히 미소 짓는 사무관들을 보자면 박검사해국은 검사실에서도 공식 커플링인 듯 하다.
사실 해국은 박검사를 지방으로 좌천시킨 장본인으로 애증의 상대지만 증보다는 애가 백만배 쯤 더 큰 듯 박검사는 해국을 지켜주려 몹시 애쓴다. 해국에 대한 정보공유차 자신을 찾은 천이장에게 해국을 건드리면 평생 냉골바닥에서 썩게 될 거라고 위협하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변호사를 찾는 “우리 유해국씨”에게 기꺼이 ‘박변호사’ 행세까지 해주며 신변을 인수받으러 나서는 등 대활약한다. 이렇게까지 해국을 아끼고 있으니 천이장이 박검사의 개인신상까지 조사해가며 유혹을 해도 “저는 당신이 싫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머쓱해진 천이장은 “누가 연애하자 켔나”라고 쓴 입맛을 다신다. 천이장과 담판하러 간 해국을 구하기 위해 수사관들을 이끌고 마을에 진입할 때의 박검사는 그야말로 공주님을 구하기 위해 나선 백마 탄 기사의 모습이다.
▲▲ 영화 내내 이어지는 박검사와 해국의 연애전화. 밀당이 보통이 아니다.
▲ 해국을 보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박검사. 수사관들을 이끌고 천이장의 집으로 향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주를 구하기 위해 백마 타고 나타난 왕자님 포스.
영화 상영 전 무대인사에서 다소 긴장한 듯한 배우들의 분위기를 유해진이 재치 있는 농담으로 반전시킨다. 남아공에서 <이끼> 기자시사를 위해 다른 대표팀들보다 먼저 귀국했다는 넉살로 폭소를 이끌어낸 것이다(유해진과 김혜수가 함께 찍힌 사진이 해외 웹에 박지성과 그의 연인으로 잘못 소개된 헤프닝이 있었다). 유준상은 상영 후 기자 간담회에서 유해진의 이 농담을 받아 옆자리에 앉은 유해진을 보며 “박지성씨?”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재영은 오늘은 심판의 날이라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캐스팅 논란 때문에 부담감이 컸다고. 그러나 결과를 떠나 잘한 모험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정재영이 이러한 얘기를 하는 와중에도 나란히 앉은 유해진과 유준상이 계속 무언가를 속삭이자 참다못한 정재영이 말을 하고 있는데 집중을 하지 않는다며 버럭 하기도. 정재영은 자신은 집중해주지 않으면 말을 못한다며 저기도 집중안하는 분 계시다고 뒷자리 앉은 기자를 대놓고 지적해 또 한번 웃음이 터졌다.
유일한 홍일점인 유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배우 대접을 못 받았다며 심지어 정재영은 자신을 여배우가 아니라 전우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강우석 감독은 스릴러에 웃음 코드를 넣는 것이 몹시 힘들었으며 배우들도 속을 많이 끓였는데 특히 박해일이 캐릭터를 잡지 못해 괴로워하다 영화 촬영 끝날 때쯤에야 이제 감이 온다고 말해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했다. 박해일은 이에 받아 자신에게는 강우석 감독이야말로 천용덕 이장 같았다며 부담감을 표시했다.
유준상은 자신의 캐릭터에 만족한 듯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예의 호탕한 너털웃음을 웃었고 강우석 감독에게 멋진 역할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공치사를 하기도 했다.
▲ 남아공에서 금방 귀국했다는 유해진의 농담에 빵 터진 유선, 유준상, 박해일(왼쪽), 다정하게 환담을 나누고 있는 해진준상. 정재영 발언 중에도 계속 둘만의 세계를 형성하자 정재영은 집중하지 않는다고 발끈하기도(오른쪽).
이어진 포토타임에서 무대 아래서 대기하던 박해일은 갑자기 옆에 서 있던 정재영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는데 너무나 태연히 선배의 얼굴을 만지는 박해일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피하지 않고 받는 정재영을 보며 본 기자 몹시 당황했으나 아직도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미스터리하다.
단독촬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정재영은 좀더 자연스러운 포즈를 요구하자 깜찍하게 브이자를 그려 보이고 내친 김에 양손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보이며 귀척을 제대로 해 폭소를 이끌어냈다. 천용덕 이장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깜찍한 모습을 기자시사에서 맘껏 과시한 것이다. 단체 사진을 찍는 중 갑자기 사라졌던 유준상이 뒤늦게 무대 위로 난입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촬영 중 박해일과 나란히 선 정재영이 다정하게 박해일의 어깨를 감싸 안았는데 정작 여배우인 유선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서 있어 본의 아닌 여배우 소외의 현장이 연출되었다.
▲ 깜찍하게 브이자를 그리고는 개구지게 헤헤 웃는 정재영
▲▲ 정재영의 팔이 박해일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고 있다. 본의 아닌 여배우 소외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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