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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주's 펀토리 매거진] Vol.7 '남상미'
【女神’s Funtory 杂志】Vol.7南相美
대한민국에서 삼십대로 살다 보면, 어떤 상황과 상대라도 초월하여 대화가 가능한 제일의 화두가 있다. 친하든 아니든, 어르신이든 후배든,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전 방위 커버 가능한 대화 시작의 만능 키워드, 바로 ‘결혼’이다. “결혼 하셨어요?” 로 시작되는 대화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즐거운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 때조차도 (심지어 말하고 있는 사람도) 이어진다.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의 주인공 송지혜는 그 만능 키워드 앞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서른의 예쁘고 능력 있는 라디오 작가인 그녀는 1년 정도 만난 완벽한 조건의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여행지에서 만나 첫눈에 반한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며 현실과 로맨스를 이리저리 오간다. 물론 송지혜의 서른은 현실의 서른보다 훨씬 멋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복숭아 농장을 혼자 산책하는 장면을 볼 땐 왠지 이런 내레이션이 들리는 것 같았다. ‘결혼,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서른 된 미혼 여성과 송지혜가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의 허리, 삼십대 초반 그룹에 속해있는 한 여자의 얘길 해보려고 한다. 그녀는 현재 결혼 생각이 없다. 사회적 시선으로 봤을 때 완벽한 (어쩌면 조금 늦은) 결혼적령기에 있지만 아직은 홀로 이루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영원히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이 먹는 게 무섭다고 아무하고나 결혼할 순 없잖아, 딱 맞는 사람 만나기만 하면 바로 하지, 뭘 망설이겠어.” 라고 당당히 말하지만 그 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는 본인도 잘 모른다. 서른일곱까진 남자가 끊임없이 보인다 하더라고, 연초에 본 사주 이야길 하면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속으로는 서른일곱까지 앞으로 몇 년이나 남았는지 세어보고, 소개팅이 싫어서 오는 족족 거절하지만 주선 횟수가 줄어드는 것이 은근히 신경 쓰이는 여자. 나일 수도, 나의 친구일 수도, 또 내가 모르는 내 친구의 친구일 수도 있는 요즘 여자의 모습이다.
여자는 드라마 속 송지혜가 답답하다. 감자과자를 씹으면서 한숨을 몇 번 쉬었는지 모른다. 저렇게 잘나고 예쁜 여자가, 남자 배경에 욕심도 없다는 여자가, 어째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한테 저렇게 끌려 다니는가. 널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남자가 그래도 괜찮다고 하면, 거기서 말문이 막힐 게 아니라 ‘그게 어떻게 괜찮으냐. 난 괜찮지 않다. 난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 살 수 없다.’고 더 강하게 말했어야지. 왜 그 말을 못해 그를 ‘방치’하고(제일 싫어한다), 정작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는 아프게 하냐고. 왜 본인 캐릭터답지 않게 부는 바람 다 맞는 갈대처럼 흔들리느냐고 화를 낸다.
그러다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민망함을 느끼면서,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생각해보니 여느 드라마보다도 훨씬 더 혹독하게, 여자는 송지혜에게 스스로를 대입시켰던 것 같다.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결혼 적령기의 송지혜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을 그려 넣었던 것이다. 어느 날 퇴근하는 길, 횡단보도 건너편에 갑자기 나타난 유니콘 같은 사랑. 그런 환상동화를 맞닥뜨리는 것이 얼마만큼 어려운 일인지 그녀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 로또 같은 확률의 사랑을 잡지 않고 흔들리는 모습이 더 보기 싫었던 것이다. 갈팡질팡 하는 감정이 더 바보 같아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행동이 더 이기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걸 알고 나니 송지혜가 원치 않았지만 누리고 있는 사랑까지도 마치 제 것처럼 느껴지면서, 여자는 한순간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렇다. 내 사랑‘인 것 같은’ 상대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해서 곁을 지켜준 사람을 한순간에 내팽개쳐도 되는가. 내 감정이 중요하지 않은 너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내가 하는 사랑이 진짜라고, 상대방을 가르치려 들고 면박을 줘도 되는가. 정작 본인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얼마만큼 확신할 수 있는가.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그녀는 드라마를 보며 감자과자를 씹는다. 간간히 “아오, 저걸. 아, 어떻게 해.” 하고 ‘주말드라마에 어울리는’ 감탄사를 섞어가면서. 어느덧 여자는 송지혜도 그녀의 두 남자도 애틋하게 느껴진다.
동정도 사랑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그 나름의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고마움 역시 그 나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미움도 그렇고, 공포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사랑이 될 수 없는 감정은 무관심뿐이다. 어쩌면 송지혜는 자신이 여태 느꼈던 감정들과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해가 갈수록 절감하는 건, 감정을 정의하는 것에 대해 절대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감정이란 시작이 같더라도 어느 것이 어떤 때에 어떤 순서로 얼마만큼 섞이느냐에 따라 마지막이 천차만별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자주 떠올리게 되는 문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사람, 결국은 사랑.’ 여행지를 회상했을 때 예전처럼 멋진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이나 말투, 분위기 같은 것을 떠올리며 웃음이 나올 때, 만나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 또 발렌타인데이에 선물할 초콜렛을 직접 만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 같은 여자도 ‘원 러브’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바로 지금이 그렇다.
몇 명의 사람을 만나고, 몇 번의 사랑을 하면서 누구나 한 번 쯤은 느꼈을 것이다. ‘아,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사랑을 하는 건, 칼로 무 베듯 자를 수 있는 제안을 물 베듯 자르며 설레어하는 건 왜일까. 결국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만의 로맨스가, 판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송지혜가 어떤 사람을 택하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바래본다. 시작이 고마움이든 설렘이든, 마지막은 그녀의 ‘사랑’인 사람에게 스스로 찾아가 그의 곁에 있기를.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만이’ 완벽한 결혼이라고, 본 게 많아지면서 마음이 미약해진 나는 100% 단언하지 못한다. 적어도 송지혜가 기다리고 있을, 그리고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결혼의 여신은 분명히 그게 맞다고 해줄 거다. 손을 잡으며 외쳐 줄 거다. “You Win!" by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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