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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TV] 이 땅의 철수들아, 콘돔 쓰는 것은 네 몫이란다
매거진t 기사전송 2008-04-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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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사랑해>의 영희(서지혜 )는 씩씩하고 귀엽다. 서지혜는 야무지고 혼자서 열심히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아가씨를 사랑스럽게 연기한다. 그렇지만 영희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숨이 턱턱 막힌다. 낙태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영희의 주장은 스물한 살짜리 여자애의 생각이라기보다는 5~60대의 보수적인 어르신이 얘의 몸에 빙의해서 준엄하게 훈계하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어쨌거나 도저히 믿을 구석 없어 보이는 한심한 애 아빠 철수(안재욱 )가 없이도 좋은 엄마가 되리라고 결심하며 육아 책을 읽고, 아기를 위해 좋은 공기를 마시려 수목원에 가고 미혼에도 출산 휴가를 쓸 수 있냐고 묻는 영희는 그래도 귀여웠다.
미혼 여성은 정녕 미완성의 상태인가
그렇지만 마음 놓고 귀여워하기에는 영 기분이 그렇다. 나는 낙태를 반대하거나 찬성하지 않는다. 낙태에 대한 주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데 누군가 찬성하거나 반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현실적으로는 중절수술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단 법률상으로는 낙태는 불법이다. 즉 아직 한국 여성들은 법적으로 낙태권을 갖지 못했다. 낙태권은 커녕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해서도 맞벌이하느라 애 가질 생각을 못하는 여성들도 욕을 먹는 판이나 완전한 낙태권을 주장했다가는 돌을 맞을 것이다.
<사랑해>와 해맑은 영희가 살짝 불편한 것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당연히 해야 할 어떤 것들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세상의 시선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다. 지금은 아직 임신 중이지만 영희는 틀림없이 우여곡절 끝에 철수와 결혼하게 될 것이고, 어린 나이에 엄마 겸 주부 겸 아내가 될 것이다. 그런 이후에 그녀는 바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노파심이 슬슬 밀려온다. “역시 엄마가 되어 보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사람은 결혼을 해야 비로소 완전해진다고, ‘미혼’ 시절의 나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고.” 과연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는 여성들은 완전한 것이 아닌가. 30년 가까이 길게 계속되는 예고편처럼, 인생의 본편에는 아직 진입하지 못한 반편이일까.
제발 영희가 그 말만은 하지 않기를
영희 너는 변태도 때려잡고, 회사에서도 우수한 사원인데 왜 그런거니.
나는 <사랑해>가 좋은 배우들이 나오는 좋은 드라마이길, 예상치 못하게 결합한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랑을 나누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 지금까지 전력으로 보건대, 영희는 ‘애 낳아보지 않고 결혼도 안 해 본 여자의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다분해 보여서 괜히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제발 그 규칙까지는 전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옆집 사는 친한 동생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는 영희가 딱해 죽겠다. 물론 아기는 신의 선물이지만, 그게 꼭 지금 수령해야 하는 선물은 아니다. 알 거 다 아는 철수가 콘돔 안 쓴 게 최고로 문제인 것이다.
영희는 틀림없이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어 행복해지겠지만 혼자 사는 젊은 여자의 집은 어떤 남자들에게는 정욕과 숙박이 동시에 해결되는 핫스팟으로 떠오르기 마련인데, 영희의 언니는 바람난 남편 잡느라 너무 바빠서 다 큰 동생에게 그런 귀띔 하나 해주지 않은 걸까, 나라도 옆집 살았으면 해줬을 텐데. “영희야, 콘돔 써야지, 너는 이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니 친구들한테는 꼭 콘돔 쓰라고 하렴. 그리고 너는 틀림없이 행복해지겠지만 꽃 같은 나이에 그 행복에 닿기까지 너무 괴롭지 않길 바래. 언니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희 친구들아, 니들이라도 콘돔 꼭 쓰자고 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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