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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대세일보 VS ‘현실속’ 조선일보
[백혜영의 드라마 투덜대기] MBC 수목미니시리즈 ‘히어로’
2009년 12월 11일 (금) 21:18:43 백혜영 기자 otilia@pdjournal.com
# 장면 1.
늦은 밤 어두컴컴한 바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 <대세일보> 회장 최일두와 얼마 전 ‘룸살롱 난동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박상원 국회의원이다.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진행된다. “이번 일만 해결해주시면 회장님이 말씀하신 일은 책임지고 진행해 보겠습니다”. 곧이어 <대세일보> 기자 강해성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우리가 좀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 사주의 말에 기자는 저항하지 못한다.
# 장면 2.
다음날. 박상원 의원의 ‘룸살롱 난동 사건’ 은폐 작업이 진행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 <대세일보>가 나섰으니 안 되는 일은 없다. 강해성 기자는 이른바 삼류 잡지로 불리는 <먼데이 서울>에 난 ‘룸살롱 난동 사건’이 합성사진에 의한 조작이라고 주장하며, 후배 기자들에게 기사를 쓰도록 지시한다. 물론 목격자와 전문가 섭외도 이미 마쳐놨다.
# 장면 3.
‘박상원 의원 룸살롱 난동 기사, 사실 아닌 것으로 드러나’ ‘무분별한 언론사의 난립으로 자극적이고 확인되지 않은 기사 남발’…. 다음날 <대세일보>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실린다. 한 순간에 진실은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인양 행세한다. 사람들은 당연히 삼류 잡지보다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 <대세일보>를 믿는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히어로>의 한 대목이다. 삼류 신문 기자 진도혁(이준기 분)이 재벌 언론사 <대세일보>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히어로>는 극 초반 현실에서 벌어졌더라면 정말 ‘오싹’할만한 에피소드들을 몇 개 펼쳐놓았다.
국회의원에게 청탁을 받은 사주의 한 마디에 명백한 사실조차 한 순간에 왜곡된 이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사람들은 오히려 사실을 왜곡한 <대세일보>의 거짓 보도를 진실로 믿고 있다는 점이다. ‘큰’ 언론사의 힘은 그만큼 막강하다.
▲ ⓒMBC
단지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안타깝게도 <히어로>에 나온 장면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실제로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이른바 ‘안원구 문건’ 파문은 드라마 속 허구가 현실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후보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에 해당했던 ‘도곡동 땅’ 소유 의혹 기사가 정부 고위 인사와 해당 언론사 사주의 회동 이후 보도되지 않아서다. 지난달 27일 <한국일보>가 보도한 이른바 ‘안원구 문건’에서 안원구 국세청 국장은 정부 고위 인사가 유력 언론사 대표를 만나 한상률 전 국세청장 유임 로비 의혹, 이명박 대통령 도곡동 땅 소유 의혹 등이 포함된 기사를 막는 모종의 거래를 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해당 언론사 대표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으로, 정부 고위 인사는 백용호 국세청장으로 드러났다. 기사를 준비했던 곳은 <월간조선>이었다. 드라마 속 <대세일보>와 현실 속 <조선일보>의 모습이 겹쳐지는 지점이다. 물론 <조선일보>는 방상훈 사장과 백용호 국세청장이 만났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기사 관련 거래 의혹은 부인했다.
<조선일보>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해명은 이렇다. “언론사 대표와 정부기관장의 만남은 의례적이고 관례적인 일로, 본사와 국세청 간 안씨 관련 보도의 무마 또는 거래 운운하는 주장은 허무맹랑한 조작이다”.
이후 관련 언론 보도 역시 조용하기에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방상훈 사장은 백용호 국세청장과 만나는 자리에 <월간조선> 취재 요약본을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와 관련해 거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왜 굳이 취재 요약본을 가져갔는지 모를 일이다. 단지 <히어로>에서처럼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p.s. 이밖에도 <히어로>에는 몇몇 언론이 보기에 ‘뜨끔할’ 내용들이 초반에 꽤 등장했다. 대세그룹 회장과 그의 딸이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봉사활동 한 내용이 <대세일보>에 크게 보도된다든지, 대세건설이 관련된 재개발 지역에서 발생한 자살 등 여러 문제에 대해 <대세일보>는 눈을 감거나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하는 것 등이다.
앞으로 <히어로>는 <대세일보>와 왕년의 조직 폭력배 두목이 창간한 <용덕일보> 사이의 한판 대결을 그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실제 조폭보다 더 ‘조폭스러운’ 재벌 언론사의 어두운 이면은 속속들이 파헤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 속 일부 언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씁쓸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용덕일보> 사장 조용덕이 언론을 향해 던진 따끔한 한 마디다.
“재개발 지역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야.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사람이 한 명 자살했다고 하는데 대체 왜 죽었는지, 어떤 배경이 있는지를 모르겠어. 요즘 신문들은 그런 게 좀 인색한 것 같아. 궁금한 걸 알려줘야지.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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