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楼主 |
发表于 2011-7-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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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施厚朗
(网翻看了下,应该是韩饭根据预告三的3分钟排列的事件时间顺序)
3분예고의 재배열(수정 )
3分钟的重新排列(修正)
멋있으세요님..말씀대로 하니 훨 매끄러워 수정들어갑니다.^^
# 달달한수업......
구무택언이며 신무택행이라...(이거였..교재는..ㅋ효경이라 합디다 )
법이아니면 말하지 아니하고 도가아니면 행하지 아니하며....츄츄츄...
# 부마간택거부로 투옥된 소식듣고. 1차로 공쥬를 찾아간 세령.
처음으로 부부의 연을 맺어도 좋을 사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무슨말을 하고 있는 거냐?
마지막입니다. 한번만 뵙게 해 주십시오.
내게 그가 필요한 건 연정따위의 배부른 이유가 아니다.
호시탐탐 옥좌를 노리는 니 아비로부터 세자와 나를 지키고자 함이야.(아직 문종승하전 )
제 아버지가 조카인 마마와 세자저하를 해하기라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너와 나만 몰랐을 뿐 온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 김승유 죽게 생겼단 말을 듣고. 2차로 공쥬를 찾아간 세령.
궐안에 그림자라도 비치지 말라 했거늘...
마마...스승님께서..누군가는 스승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하지 않습니까.
네가 공주노릇을 했다 낱낱이 밝히기라도 하겠단 것이냐?
스승님을 살릴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니가감히...
# 안되겠다. 무슨수를 써서라도 그 여인을 만나봐야겠어. 승유좀 꺼내볼라고
무슨일인가..
한성부 판관 신면이라 하오이다.
수양대군 대감이시다!!!
위세따위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눈빛이라...신면이라 했는가. 너 수양대군의 오른팔되지..아빠랑..
# 김승유...세령이 덕분에 나오는 모양이다...^^ 투옥되었을때 다쳤니?
참으로 당찬 여인이다. 제목숨을 던져 사내를 지키려 하다니...
대체 누구냐?
내 제자다아. 흐뭇흐뭇,,도련님!.요때는 글엄.세령을 누구로 알고 그리 흐뭇한 미소를 보내는건지??...궁금...
# 우상과 나만이 돌이킬수 없는 참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주상전하께서 승하하신후...
말씀을 삼가하시오!!!
나 수양이 옥좌를 돌같이 보면 어린세자저하를 보필만 하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대감과 나 둘중 누군가는 피를 보겠지요.
나 김종서는 죽음따윈 두렵지 않소.
1452년 5월 13일 문종승하(37세 ) 1452年5月13日 文宗驾崩(37岁)
1452년 5월 18일 단종즉위(11세 ) 1452年5月18日 端宗即位(11岁)
1452년 9월 수양대군, 단종즉위를 인정하는 명나라 황제의 시은사를 자청
견제세력을 안심시키는 등 치밀한 행보
1453년(단종 1년 ) 10월 10일 김종서, 김승규 살해를 시작으로 피의숙청..
정란공신을 세우고 수양대군 본인이 영의정이 됨으로 정권장악.
10월 18일 안평대군 사사
This is 계유정란.
1453年(瑞宗 1年) 10月10日 以杀害金钟瑞、金胜圭为开端,血的肃清...
靖乱功臣首阳大君担任议政,掌握政权。
10月10日 安平大君 致歉
这就是 癸酉靖難
# 10월 10일 밤.
수양!! 지하에서도 네놈을 용서치 않으리라.
아버지이......손......뻗......
어쩌어찌 첫장면...처럼 피흘리며 쫓기면서 말타고 도망..
(주인공이다..절대 죽이지말고 생포하라..라고 수양이..시키....)
1455년(단종 3년 ) 비호세력 금성대군 유배등..측근을 하나하나치워가는 수양대군
6월(윤?) 압박을 못견딘 단종. 수양에게 양위.
수양대군 잠시,, 놀람, 사양의 제스츄ㅓ..해주시고.
1455년(세조 1년 ) 6월 11일 세조 덥석 즉위
1456년(세조 2년 ) 6월 사육신에 의한 1차 단종복위운동 실패 & 사육신 처형
1457년(세조 3년 ) 9월 단종, 노산군으로 강등 & 영월유배
9월 금성대군에 의한 2차 단종복위운동 실패 & 10월 금성대군 사사(32세 )
10월 노산군 사사(17세 )
1461년(세조 7년 ) 영양위 정종. 모반을 꾀했다 하여 능지처참됨.ㅜㅡ
그리고...한숨돌려.
1467년(세조 13년 ) 이시애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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资料
安平大君 维基百科
安平大君,名李瑢,朝鲜世宗的嫡三子。
李瑢在世宗、文宗、端宗时期的记录并不多,但在世祖即位之后因为反对世祖而与其子宜春君李友直一同被流放到江华岛的乔桐,不久被赐死,当时被牵连的还包括世宗的嫡六子锦城大君李瑜、汉南君李玗都同样被赐死,他们的后代也都被废为庶人,直到英祖时才得到正式的平反,正史谓之癸酉・丙子士祸,此事也可说是日后死六臣事件的导火线。
[ 本帖最后由 greencrystal 于 2011-7-16 12:16 编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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