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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여고생을 욕망하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유명한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이야기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 줄 맞춰보겠다"고 말했다. 식생활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은교'는 그 사람의 욕망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하는 영화다. 알려졌다시피 '은교'는 박범신 작가의 원작소설을 '해피엔드' '사랑니' 정지우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이다. 교과서에도 시가 실려 있는 70대 유명 시인이 여고생 은교에게 욕망을 느끼는 한편 그의 제자인 30대 남자가 은교와 탐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은교'는 노골적인 영화다. 여체를 다루는 게 노골적인 게 아니라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노골적이다. 한적한 시골 별장 같은 집에서 세상에 초연한 채 살아가던 시인 이적요(박해일)는 어느 날 품안에 날아든 종달새 같은 여고생 은교(김고은)를 발견한다. 시인은 은교의 새하얀 다리, 봉긋한 가슴, 사슴 같은 긴 목을 욕망한다. 잃었던 젊음을 떠올리며 탐닉하고 싶어 한다.
그런 스승이 제자 서지우(김무열)는 불편하다. 아버지처럼 추종하던, 아니 닮고 싶어했던 스승을 어느 순간 은교에게 빼앗긴 것 같아 서운하다. 스승이 쓴 소설을 자기 이름으로 세상에 내보낸 제자는 스승을 대신해 은교와 관계를 맺는다. '은교'는 그런 욕망들이 충돌하고 부딪히면서 시종 긴장을 준다.
정지우 감독은 '은교'를 현명하게 각색했다. 소설에서 이적요와 서지우가 바라보는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은교에게 생명을 줬다. 이 현명한 각색은 스크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정지우 감독은 빛과 음향, 그리고 클로즈업으로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를 밀도 있게 만들었다.
젊음의 상징 같은 은교에겐 늘 환한 빛을, 그리고 지하실 서재에서 죽어가는 늙은 시인에겐 잿빛을 내리쬔다. 방황하는 제자에겐 회색빛이 떠다닌다. 노골적인 빛의 분할은 활자로 전할 수 없는 영상의 몫이다. 음악도 최소화했다. 영화에서 음악은 종종 주인공들의 감정을 한 방향으로 이끈다. '은교'는 소리를 최소화해 보여지는 대로 감정이 따라가게 만든다. 시끄러운 음악이 난무하는 영화들에 익숙한 관객에겐 낯설 수도 있다. 그만큼 집중력이 필요하다.
'은교'는 한정된 공간에서 세 사람이 벌이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밀도가 없으면 자칫 지루하기 십상이다. 정지우 감독은 세 사람의 얼굴을 마치 TV 화면처럼 클로즈업해 긴장감을 유지한다. 대형화면에 배우들의 얼굴을 가득 잡는 건 모험이다. 정지우 감독의 모험은 성공했다.
'은교'에서 두 번의 정사신은 '색,계' 정사신처럼 이야기에 긴장을 더하고 감정을 증폭시킨다. 보이기 위한 정사신이 아니라 서글픈 정사신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정사신의 모범답안 같다.
박해일과 김무열, 김고은의 연기는 '은교'를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박해일 캐스팅은 탁월했다. 노인과 여고생의 관계라는 설정이 줄 수 있는 논란과 거부감을 박해일이란 배우가 분장을 하면서 현명하게 피해갔다. 박해일은 분장으로 얼굴표정이 제한된 가운데 눈빛으로 이야기를 장악한다. 노인 대사톤이 처음엔 거부감을 주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김무열은 이 배우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치졸한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김고은은 첫 영화라곤 믿을 수 없는 연기를 보였다. 다만 시인에 영감을 주는 뮤즈 역이라 그런지 욕망의 대상으로 비춰져서 그런지, 지나치게 대상화됐다. 김고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은교'는 보는 관객들에 따라 이입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긴장을 강요하는 게 불편하거나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 동의하는 순간 빠져들게 만든다. 여고생을 둘러싼 노스승과 제자의 치졸한 싸움은 욕망이란 게 얼마나 비루하고 또 현실적인지를 드러낸다.
'은교'는 이적요의 입을 통해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에 아파한다면 '은교'에 동의할 것이다. 마지막 뒤돌아 누워있는 이적요에게 은교가 이야기하는 장면은 노골적인 이 영화에 가장 빛나는 노골적인 장면이다.
여고생을 욕망하고, 젊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아파하고, 후회하는 이야기. '은교'는 당신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되묻는다.
26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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