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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WEEK 銀嬌原著作者專訪
‘은교’ 박범신 작가 “원작자는 원래 만족을 못해”
4월 25일 개봉한 영화 <은교>가 박범신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소설이 없었다면 한국 영화에서 이토록 불온하고 파격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은교>의 세계를 제일 먼저 잉태한 박범신 작가를 만났다.
“늙어가는 건 고단한 거예요. 존재론적 슬픔이지. 그런 점에서 은교는 그냥 젊고 예쁜 여자, 젊은 육체가 아니라, 영원한 처녀성, 진선미 같은 완전한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인 거예요.”
- 소설 <은교>의 영화화 판권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왜 정지우 감독을 택하셨어요?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해피 엔드>(1999)를 봤는데 인간의 밑바닥 본능에 대한 예민한 관찰력, 통찰력이 있고 인간의 본능적 심리를 잘 그리는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만 해도 투자가 결정된 것도 아니었고 캐스팅이 된 것도 아니었거든. 정지우 감독을 믿고 판권을 준 거죠.
-영화 만들 때 정지우 감독과 얘기 많이 하셨어요?
나는 원작자로서 감독한테 되도록 요구하지 않으려고 해요. 부담될까 봐 말을 삼가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토론을 많이 했어요. 정지우 감독은 말을 많이 안 하고, 나는 말을 많이 하는 그런 토론이었지.(웃음) 내가 제일 많이 말한 건 ‘노인 포르노’가 되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이 작품에서 섹스는 부차적인 것이거든.
삶의 유한성에 대한 존재론적 주제가 살아나길 바란다는 얘기를 했죠. 그 다음으로, 능(能)과 명분 사이에 숨어 있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구조가 있어요. 특히 지식인 사회에. 사랑, 관능, 섹스, 문화 등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하게 구는 태도를 건드리고 해체하고 옷을 벗기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이런 얘기 해도 되나? 정지우 감독이 나한테 물은 건 사실 하나뿐이었는데, 그게 “여자 주인공 가슴이 커야 되나요?”였어요. 그 말 듣고 ‘혹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처럼 그리려는 건가?’ 걱정을했어요. 한참 얘기하다 보니 그건 아닌 거 같더라고.
-<은교>와 <롤리타>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롤리타>는 여자가 10대가 아니면 성립 안 되는 소설이에요. 미숙한 10대 소녀에 대한 욕망을 다루고 있거든. 하지만 <은교>는 은교를 20대 중반이나 30대 초반으로 설정해도 가능한 이야기예요. 은교를 열일곱 살로 설정한 건 극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장치일 뿐 반드시 10대일 필요는 없어요.
-서지우를 연기하는 김무열에게 ‘젊은 예술가는 누구나 다 서지우’라고 하셨다면서요?
이적요, 서지우 전부 내 안에 있는 나를 분리해서 만든 인물이에요. 모든 예술가가 다 그럴 텐데 어떤 날은 자기가 천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어떤 날은 재능의 한계에 부딪히잖아요. 소설 <은교>를 쓸 때는 내가 이적요 같았어요. 붕붕 날면서 썼거든. 한 달 보름 만에 장편을 다 쓴 건 처음이니까. 40~60대를 지내면서 생로병사에 맞물려 늙어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 쌓여 있었는데 <은교>를 쓰면서 그걸 다 털어놓았어요.
<은교>를 쓰고 나니까 늙어가는 걸 편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근데 어떤 소설을 쓸 때는 여전히 막혀서 안 나간단 말이야. 그럼 내가 서지우가 되는 거야. 머리를 벽에 박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재능이 없지?” 그런 말도 하고. 그런데 독자들 중에는 자기가 서지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
-소설 <은교>도 그렇고 선생님은 ‘베스트셀러 작가’시잖아요.(웃음) 영화 <은교>가 흥행할 것 같으세요?
반반이에요. 중간에 이적요가 서지우를 죽이게 되는 감정을 관객이 이해할지가 의문이에요. 영화에서는 서지우와 은교가 섹스하는 장면을 보고 이적요가 서지우를 죽이는 걸로 나오잖아. 설명이 부족하다고 봐요. 원작에서는 서지우가 ‘노랑 머리’를 시켜서 이적요를 가격하거나, 이적요의 옛 소설을 팔아먹거나 하는 세세한 설명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적요가 서지우를 죽일 수밖에 없다는 데 독자들이 동의해요.
또 이적요가 풍기는 카리스마, 고독한 카리스마는 결국 그가 살아온 시대와 관련 있는 거거든요. 원작에는 노인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설명이 많아서 그 카리스마가 개인의 범주에서 머물지 않고 시대의 고독감으로 견고해지는데, 영화에는 그 부분이 빠져 있어서 단순히 70대 노인 이적요가 열일곱 살 은교를 사랑하는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거 너무 영화에 대한 비판만 한 거 같은데? 원작자는 원래 만족을 못해요. 또 내가 말을 잘 못해. 말만 많이 해서 인터뷰하고 나서 집에 가면 꼭 후회해. 불만만 많이 쓰지 말고 영화 칭찬 많이 해줘요. 영화 잡지가 영화를 도와줘야지. 괜히 잘못 말했다고 영화팀한테 혼날까 봐 무서워서 그래.(웃음)
*인터뷰 전문은 <무비위크> 525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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